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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게 재미없는 인생

구름뜰 2013. 4. 6. 10:42

대학생 자녀 대신 출석. 피켓 시위까지 하는 부모

중년의 행복은 자식 때문이 아니라 자신 덕분이다.

 

  “실례하지만 누구신가요.”


 지난해 서울 시내 한 대학 교수가 수업시간 대학생으로 보기엔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에게 이렇게 물었다.


 “애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 교수는 엄마의 대출(대신 출석)도 놀라웠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필기까지 대신 해주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학문을 하는 곳이라는 대학에도 부모가 들어왔다. 부모가, 특히 엄마가 수강 스케줄을 대신 짜준다, 시험 본 뒤 학점을 대신 문의해준다, 학과 사무실에 전화해 장학금을 알아봐준다, 성적이 잘못 나온 거 같다고 따진다 등등의 사례는 이제 너무 일상화됐다고 할까.


 최근엔 대학 총장실 앞에도 학부모들이 찾아가 피켓을 들었다. 물론 시위가 잘못됐다거나 이를 비난하려는 취지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곳에 아이보다 부모가 훨씬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대학에 안 보냈다”는 부모의 목소리는 “내가 어떻게 노력해서 온 대학인데”라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바뀌었어야 했다.


 대학생이면 성인이다.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의 사람이다. 대학 당국의 부당한 조치에 성인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뒤집어엎어야 한다. 대학이 누구 돈으로 운영되는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 분들은 부모다. 자신들의 문제에 엄마가 나서는 건 정상이 아니다.

 

 자녀 주위를 빙빙 도는 헬리콥터 맘이 문제라고, 핵가족화 현상의 결과라고 어쭙잖은 해설을 여기에 붙이고 싶지는 않다. 대신 투자 대비 산출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해서 보낸 대학인데”라는 말이 맞다. 아이가 초등학교 문에 들어설 때부터 얼마나 마음 졸이며 수년간 공들인 결과인데 어떻게 산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 갔으니 이제부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고 말하며 쿨하게 손 놓기란 쉽지 않다. 대학 내내 스펙 관리에다 취업까지, 심지어는 결혼에도 손을 대는 부모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아이들에게 집착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현재 중·장년은 그래도 복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 중년의 부모 세대는 먹고살기 버거워서 지금처럼 이렇게 개입하기 어려웠다. 과거 부모에겐 투자 대비 산출이 아주 높다.

 

 그런데 PC 자판의 커서를 눌러 내 생각을 꽉 채우고 있는 자녀 걱정을 한번에 딜리트(삭제)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남는 게 있을까. 내 삶을 충실하게 채워줄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아이의 인생에서 쿨하게 손 뗄 수 있다.

 
 회사의 한 선배는 본인이 MBA, 아이는 로스쿨을 다닌다. 아이는 등·하교 시간이 아깝다면서 학교 가까운 곳에서 자취를 하고, 본인은 젊은 학생들도 버거운 MBA의 금융 수업을 쫓아가느라 부자간 상면도 힘들다. 그래도 그 선배는 “아이에게 당당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서 즐겁다”고 말했다. 중년 이후가 행복한 건 내 자식 때문이 아니라 몰입하는 나 자신 때문이다.

 또 다른 분의 얘기다. 요즘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진현숙 대표다. 나이 쉰이 넘어서 우울증 같은 게 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일본어 배우기에 빠져들었다. 아들뻘 학생들과 일본어를 배우는 시간을 통해 힘든 그 시기를 견뎌냈다고 말했다.

 자녀가 잘못될까 두려워하기보다 자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난 뒤 스스로 건질 게 없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중년이라면 남은 인생 뭐하게 재미없을 테니까. 심지어 일흔이 넘어서도 박사과정 수업을 다니는 분도 봤다. 인생은 길어졌고, 뭔가 채워야 할 공간은 넓어졌다. 그러니 “그 나이에 교수 되려고?”라고 묻는다면 바보일 뿐이다.

 이번엔 자녀의 입장에 서보자. 부모에 의해 ‘웰메이드(well-made)’된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게’ 재미없지 않을까. 진 대표도 “인생은 자기가 주인이 될 때 즐겁고 가치 있다는 걸 요즘 학부모들도 알았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쯤 해서 쿨하게 손 떼자. 관심은 두되 개입하지 말자. 그래야 서로 구질구질해지지 않는다.
강홍준 논설위원/서소문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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