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전화

구름뜰 2013. 5. 16. 09:14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는 상수리 나무입니다.

 

거실에서 내려다 보면 한 눈에 드는데

저와는 상관없이 내맘대로 '내 나무'라고 찜해두고 마음주고 눈길 주는 나무입니다.

한데 요즘 요녀석 곁에 있는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아카시아도 친구 해야 겠습니다.

내가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해주는 것, 

겨울이 와도 저기 있는 줄 아는 것으로도 친구가 된다면 말입니다..

 

 

 

 

 

화 /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소리가 당신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와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 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느낌 / 이성복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시인의 사랑 / 진은영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나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는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잡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 곷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중략

 

 

 

 

산 풍경을 앞엣 것은 새 잎이 나던 사월초쯤일까 그때 것이고

뒤에 것은 아침에 찍은 것입니다.

사월에서 오월 사이에 연두가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지요. 

그리고 음양이 바뀌 듯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도드라지는 때 입니다.

 

창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아카시아 향이 화악 거실로 밀려듭니다.

오월의 향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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