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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마구잡이 독서' 를 권함

구름뜰 2014. 10. 8. 17:37

 
 
 문화부에서 출판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책 관련 질문을 종종 받는다. 최근 여러 번 들은 질문은 이거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읽어 봤어요? 어렵지 않던가요?” 민망하게도 다 읽지 못했다. 서장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으나 경제학에 무지한 탓일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최소한의 ‘아는 척’을 위해 별책부록 ‘피케티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를 꼼꼼히 읽었다. 물론,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책과 담을 쌓고 살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이라는데, 대략 그 언저리 아닐까 싶다. 기사에 참고할 책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찾아 든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유도 다른 이들과 비슷하다. 위 조사에서 책을 안 읽는 이유에 대해 “일이나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 다음이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다. 맞다. 시간이 없다. 주말은 주중에 놓친 TV 드라마나 개봉 영화를 챙겨 보기에도 바쁘니까.

 독서는 오락이긴 하지만 의지와 노력을 요하는 행위다. 화면·대사·자막이 어우러져 술술 오감을 파고드는 영상과는 다르다. 활자를 통해 장면을 상상해야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은 되풀이해 읽고 생각해야 한다. 피곤하다. ‘습관이 들지 않아서’라는 답도 이해가 된다. 경험에 따르면 한 번 손에서 책을 놓고 나니 어떤 책이 재밌는지, 내게 필요한 책인지 좀처럼 감이 오질 않았다.

 책을 읽는 재미에 다시 눈을 뜬 건 출판담당이 된 후부터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두 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재밌는 책은 아주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의지를 투여한 덕분이겠지만, 책에서 얻은 깨우침은 TV나 영화의 그것보다 영혼에 깊숙한 흔적을 남긴다. 일상의 고민을 해소할 지혜도 대부분 책에서 얻었다. 예를 들면 행복하다, 아니다는 상당 부분 타고난 유전적 기질에 좌우되며(서은국·『행복의 기원』), 지식에도 유효기간이 있으니 건망증의 습격에 너무 괴로워 말자든가(새뮤얼 아브스만·『지식의 반감기』), 상처 받아야 할 땐 충분히 상처 받아야 한다는 것(무라카미 하루키·『여자 없는 남자들』) 등이다.

 이 가을, 다시 책과 친해지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어렵고 골치 아프다고? 일본 학자 가토 슈이치는 『독서만능』이란 책에서 ‘마구잡이 독서’를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어려운 책은 불량한 책이거나 불필요한 책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