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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론 거부자' 낙인에 2003년 정계은퇴, 김홍신이 말하는 한국 정치

구름뜰 2014. 10. 16. 09:25

당론 늪에서 정치 구하자 ④
“내 양심 옭아맸던 폭압적 당론, 아직도 진행형" 

김홍신 전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불합리한 당론은 거부하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할 만큼 했다’ 싶었다. 내 인생을 정치인 김홍신이 아닌 소설가 김홍신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의원직을 던졌다. 정치는 더디게나마 발전할 거라 낙관했다. 지금 나는 자유롭다. 그러나 내가 작가로 돌아간 2003년과 꼭 닮아 있는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는 내 양심은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 모두 당론에 막혀 싸우는 모습,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사태에서 보듯 민생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에 매달리는 모습….

 정치인 김홍신 시절이 떠오른다. 1996년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15대 국회의원이 된 내가 제일 처음 한 일은 국회의원 선서였다. 그중 한 구절은 만 8년간의 의정생활을 오롯이 지배했다.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스스로 떳떳했다. 15대 국회 첫해인 96년 중앙일보 의정활동 평가에서 1위를 했다. 당론과 양심이 부딪쳤을 때 양심을 따른 결과라 여겼다. 그러나 동료 의원들의 시선은 달랐다. 일부는 나를 ‘상습 당론 거부자’라고 불렀다. 어느 날인가 15대 국회 동기인 이재오 의원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자. 당신을 보는 당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내 활동 무대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였다. 당시엔 모두가 기피하는 곳이었지만 힘 없는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자는 생각으로 자원했다. 분유 발암물질 이슈를 파고들었고 초등학생 신체검사를 위한 정부 지원금을 늘리기도 했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한 뒤 한나라당 소속으로 재선의원이 된 16대 국회에서도 내 자리는 보건복지위였다.

 2001년 12월 24일은 내게 무척이나 슬픈 크리스마스 이브로 기억된다. 이날 나는 건강보험 재정통합법안 처리를 미루자는 당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환경노동위원회로 강제 사보임 됐다. ‘재정통합이 건강보험제도 개혁의 핵심’이라는 양심은 당론 앞에 무력했다. 나를 내친 후 한나라당은 10분 만에 해당 법안을 상임위에서 밀어붙였다. 나는 “불합리한 당론 거부가 헌법 정신이다. 이회창 총재가 이걸 못 받아들이면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외쳤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그 날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은 차가웠다(건강보험 재정은 2009년 통합됐다).

 일부는 이런 나를 위로했다. 당시 이 총재의 측근이었던 윤여준 의원은 “김홍신답다. 한국 정치가 바뀌려면 당론과 맞서는 줏대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만섭 국회의장은 “바른 말이 당론을 이겨야 민주정치다. 바른 말은 역사가 된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소수였다. 나는 당에서 왕따가 됐다. 의원총회에선 “김홍신 출당시키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20명의 서명이 필요한데 우리 당 의원들은 내가 발의하려는 법안에 서명을 거부했다. 이런 얘기도 들었다. “김 의원은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마시라.”

 나는 그러나 내 길을 갔다. 2003년 3월 대북 송금 특별검사법을 통과시키기로 한 당론에 반대해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했다. 2003년 9월은 내 정치 여정의 종착지였다. 한나라당은 당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미군 훈련장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는 한총련의 신고를 수용해 훈련장 점거를 방조했다”는 이유였다. 내 양심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치공세’라고 얘기했다. 3일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주도로 찬성 150표, 반대 7표로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나는 149명의 소속 의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대가는 당원권 8개월 정지였다. 3개월 후인 12월 나는 “국민이 내게 준 의무는 다했다”며 의원직을 던졌다.

 내 양심을 옭아맸던 폭압적 당론 정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세계에서 최고 좋은 직업이다. 특권 많고 말도 안 되는 책으로 출판기념회 열어 돈 벌고…. 초선들은 ‘이거 한 번 더 하자’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려면 공천을 받아야 한다. 특히 영호남에선 ‘공천=당선’이다. 이들이 당론을 따르는 주류가 된다. 당론이 정해지면 군말 없이 따르는 굴종의 메커니즘이다. 한국 정치? 아직 4류다. 2류만 되면 대한민국 호(號)는 무섭게 나아갈 텐데….

 (※이 기사는 김홍신씨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리포트입니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