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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 |
방 안의 공기를 환기하듯
일상에 변화가 필요할 때
카페라는 공간은 꽤 적절
더구나 산뜻한 커피향이
언제나 피어오르지 않나
팔공산 자락에 집이 있는데, 카페가 동네 골목까지 들어와 성업 중이다. 인테리어가 산뜻하여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카페가 들어와 있다.
이런 추세가 6~7년가량 되었을까. 국내는 물론 외국 프랜차이즈까지 가세하여 이제 웬만한 만남은 카페가 담당하는 듯하다. 집으로 초대하고 방문하는 일이 극히 줄어든 셈이다. 처음에는 일부 사람이 이용하는, 딱히 긍정적인 공간만은 아니라 여겼는데 어느새 누구나 편하게 드나드는 일상의 공간이 된 것이다. 더구나 벽 한쪽에 가지런히 책이 꽂혀있는 북카페까지 있고 ‘카페 문화’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이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곳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작업하는 젊은 친구들을 심심찮게 보아왔을 것이다. 의미의 핵심은 그곳이 사교의 개념을 능가하여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한 데 있다 하겠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가 굳이 집을 두고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가는 것을 유행으로만 알았다. 더구나 코드가 달린 어댑터, 마우스, 책 몇 권까지 짐스럽게 챙기는 것이 번거롭게 보이기도 했다. “거기서 어떻게 집중을 하느냐”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뜨악하게 말해도 씩 웃으며 “일이 더 잘돼요”라고 말하며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 공간이라면 조용하고 안정되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라야 한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간단히 깨지고 말았다. 집수리하는 며칠 동안 방을 비워야 했으므로 카페를 이용한 적이 있다. 혼자였으므로 거기선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집중이 잘되었고 예상보다 많은 작업을 하였다. 긴장하지 않았지만 산만하지도 않았고, 강제는 없되 능률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또한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개방된 공간에서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사실이 즐겁고 신선했다.
그렇다 해서 내가 카페 찬양론자라는 뜻은 아니다. 이것을 카페의 순기능이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려면 그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바로 그 점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의 새로운 기능, 즉 휴식과 작업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개념이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공간의 존립이 인터넷시대의 발 빠른 전략인 동시에 인터넷세대의 적절한 응답이었다 할 수 있을까. 일하러 온 것이 아니나 일할 수 있고, 동시에 작업을 했지만 휴식을 함께했다는 이중의 정서적 충만이 그곳의 매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신만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또 소중하다. 더구나 작가에게는 그곳이 성소이든 적소이든 혼자만의 공간은 절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일의 처음과 마무리는 자신만의 정신이 스민 곳에서 하게 된다. 거기에는 오랜 날을 함께하며 자신과 관계하던 낡은 책과 책상, 바랜 벽과 전기스탠드와 필기구 등의 교감이 있는 곳이며, 더 중요한 것은 고민하고 아파하던 시간이 함께 배어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방 안 공기를 환기하듯 너무 익숙하여 변화가 필요할 때, 잠시나마 낯선 곳에 자신을 두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분위기를 바꿔볼 수 있는 방법으로 카페라는 공간은 꽤 적절한 곳이란 생각이다. 자유롭게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을 보거나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검색하고 구상하는 사람들, 잡담보다 더 생산적인 시간이 그곳에 있다. 더구나 거기엔 언제나 산뜻한 커피향이 피어오르지 않는가.
영남일보 1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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