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뒤란 같은 곳!
아파트 뒷쪽에 지인의 터가 400여평 묵정밭처럼 방치되어 있었는데. 올봄부터 이웃사촌들이 동참하여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넓지만 협동농장처럼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기로 했으니 일에 대한 부담도 덜하고, 직접 농사짓는 맛에 이웃들과 어울리는 맛까지 더해서 올해는 전원생활을 제대로 누리는 기쁨을 맛볼 것 같다.
씨앗부터 모종까지 다양한 품목을 준비했다. 고추가 200포기로 양이 제일 많고 나머지 작물들도 골고루 종류가 많다.
초보농사라 이것저것 키워보고 싶은 작물들을 골라서 모종도하고 씨도 뿌렸다.
아삭이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방울토마토, 쑥갓, 상추 등 기대한 만큼 소출이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모종한 오늘부터 영농일지를 적어보려 한다.
막걸리로 참을 대신했는데. 역시 농주는 막걸리다. 나무젓가락이 운치 있어서 담아 봤다.
집에서 챙겨간 나무젓가락이 있었는데. 막걸리 돌린 지인이 없는 줄 알고 궁여지책으로 만든거였다. ㅎㅎ
모이면 이리 흥겨운 이웃들이니, 일을 즐기면서 할 줄안다고 해도 되겠다.
아파트 울타리 바로 뒷편 차량 통행은 거의 없고 주차만 하는 곳이다. 한데 이 주변에 지난 가을에 멧돼지가 다녀갔다고 한다. 하여 텃밭을 가꾸는 이들이 다들 울타리 치는 걸 볼 수 있다.
오늘 심은 작물은 멧돼지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지만, 주말에 고구마도 심을 모양인데 아무래도 멧돼지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닌가 싶다. 3년쯤 전인가 주말농장에 고구마를 심었다가 하룻저녁에 싹 쓸어버린것을 경험해 본 터라서 더욱 그렇다.
상추씨를 뿌리는 중이다.
씨를 뿌릴때는 이것이 싹을 튀울까 싶지만 기막히게도 며칠 지나고 나면 신기하게 연두빛 새순을 볼 수 있다. 경험에 의한 씨앗에 대한 신뢰다.
'씰룩이' 도 신이 났다. 엄마따라 밭에 나왔는데 검정 비닐위에 누워도 보고 비비고 하는 것이 천상 제 운동장 인줄 안다. 다행이도 모종에는 별 관심없었다.
밭가에 민들레 홀씨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낮고 후미진 곳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지만, 바람아 오기만 해라 '나는 원없이 비상하리라'는 꿈을 키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저 둥근 비상이 아름다운 건 금방 흩어질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밭가에 심어둔 매실나무에 종종하니 많이도 달렸다. 꽃핀지가 언제였나 싶은데 벌써 이렇게 어김없이 하루하루 영글어가고 있었다.
두 어르신!께서 역시 힘드는 일을 하셨다. 여성들은 아무래도 잔 손 가는 일을 했다. 어쨌거나 잘 어울려서 보람있게 오늘일은 마무리 했다. 주변에 좋은 이웃이 있는 것도 복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이런 귀농한것처럼 제대로 농사일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매실나무와 함께 가죽나무에도 재법 순이 있었나 보다. 이른 봄날인데 윤기나는 가죽순을 보면 향기가 눈으로도 전해져 오는데, 금방 채취한 것이라 그런지 향이 정말 강했다.
어릴적 고추장떡을 이맘때 더러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밭가에서 딴 가죽으로 가죽장떡을 만들어 봤다. 부침가루에 된장 고추장만 넣었는데 맛이 잘 어울린다.
시골집 돼지우리 옆에 가죽나무가 있었는데. 엄마가 한 두번 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맛도 향도 옛날 추억속 그맛과 변함이 없는 듯 하다.
봄나물 중에서 향기라면 으뜸인 가죽새순! 이것을 아끼고 이런 향과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상도 쪽에선 유독 많은 듯 하다. 향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나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개개인의 향기도 있고, 함께 어울려 나는 향기도 있을 것이다. 나이들어 갈수록 좋아지는 건, 향기를 잘 맡게되기도 하지만 그 만큼 유연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오늘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면에서 이웃사촌이 넉넉한 내 주변은 아무래도 복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박경리 선생님은 호미가 펜이고 흙을 원고지로 생각하고 땅을 일구셨다고 했다. 영농일지가 어떠한 스토리를 더해갈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기록이 이웃사촌들과 더욱 친밀함을 느끼는 추억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기록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