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불안도 꽃

구름뜰 2015. 7. 4. 23:11

 

 

누가 알고 있었을까

불안이 꽃을 피운다는 걸

 

처음으로 붉은 피 가랑이에 흐를 때

조마조마 자리마다

꽃이 피었던 걸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몸이 마르고

밤마다 어둠을 고쳐 보는 동안

불안은 피고 있었네

 

불안은 불안을 이해했을까

그 속에 오래 있으면

때때로 고요에 닿는다는 걸

그건 허공이니까

두드리면 북소리 나는 공명통이니까

 

불안으로 불안을 넘기도 하는 것처럼

꽃은 그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은 꽃을 도왔으니

 

수많은 당신이 불안이었던 걸

이제 말해도 될까

 

흔들리면서

일어나면서

 

불안도 꽃인 것을

-이규리

문학동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중에서

 

 

불(아닐 不)자가 좋다는,

치열하게 불안할 줄

끌어안을 줄 아는 시인. 

그녀의 말은 

그녀의 시 그대로여서,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시를 듣는 듯 하다

또 그녀의 시를 읽으면

그녀가 맞은편에 앉아서 해주는 말 같기도 하다.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는 반대로

시인은 늘 不이 좋다고 했다.

시는 시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종이는 종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시인

나는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불안은 불안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가 편안하고자 하는 것은 

편하지 않은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의 인식을 놓지 않는 시인

오랫만에 함께한 시간이

또 그렇게 결코 오래지 않은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은 순간으로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감싸며 흐르고

르며 감싸이며.. ...

- 2015,7,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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