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고 있었을까
불안이 꽃을 피운다는 걸
처음으로 붉은 피 가랑이에 흐를 때
조마조마 자리마다
꽃이 피었던 걸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몸이 마르고
밤마다 어둠을 고쳐 보는 동안
불안은 피고 있었네
불안은 불안을 이해했을까
그 속에 오래 있으면
때때로 고요에 닿는다는 걸
그건 허공이니까
두드리면 북소리 나는 공명통이니까
불안으로 불안을 넘기도 하는 것처럼
꽃은 그것을 알아보았고 그것은 꽃을 도왔으니
수많은 당신이 불안이었던 걸
이제 말해도 될까
흔들리면서
일어나면서
불안도 꽃인 것을
-이규리
문학동네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중에서
불(아닐 不)자가 좋다는,
치열하게 불안할 줄
끌어안을 줄 아는 시인.
그녀의 말은
그녀의 시 그대로여서,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시를 듣는 듯 하다
또 그녀의 시를 읽으면
그녀가 맞은편에 앉아서 해주는 말 같기도 하다.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는 반대로
시인은 늘 不이 좋다고 했다.
시는 시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종이는 종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시인
나는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불안은 불안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가 편안하고자 하는 것은
편하지 않은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의 인식을 놓지 않는 시인
오랫만에 함께한 시간이
또 그렇게 결코 오래지 않은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은 순간으로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감싸며 흐르고
흐르며 감싸이며.. ...
- 2015,7,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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