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켜…
'정부가 날 돕는 건 당연’
이런 생각이 사회 지배해
결국 자립자존 정신 퇴락
“민주주의는 협박당하지 않는다.” 구제금융 관련 국민투표에서 승리를 목전에 둔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의 발언이다. 그리스와 채권단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수십 년간 흥청망청 남의 돈을 끌어다 써버렸다면 허리띠를 졸라매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힘이 들지만 그것이 옳지 않은가?’
빚으로 신음하는 그리스가 한때 대단히 역동적인 국가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리스는 1929년부터 5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를 기록해 실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 평균 경제성장률 2위를 기록했던 국가였다. 우리 경제도 저성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만 세계은행에 따르면 60년대 이후 30년 동안 세계 187개국 가운데서 가장 성장률이 높았던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한때 고성장을 자랑하던 국가도 어떤 시점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급격히 꺾이는데, 그리스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가 1981년 11번째 유럽공동체(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만 해도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28%, 실업률도 3%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그리스의 국가부채 비중은 180%(3천180억달러), 실업률은 26.6%나 된다. 그리스의 몰락은 정치 명문가 출신의 똑똑한 한 정치인이 불을 지폈다. 81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좌파정당인 파속당을 만들어서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다. 그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거 공략으로 표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보편 복지정책, 공공부문 확대, 정부 개입 강화, 보호와 온정주의 정책으로 그리스의 정치지형뿐만 아니라 사회 모습도 바꿔버렸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그리스 경제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 50%를 넘어섰다. 좌파 성향의 경제정책은 국가 개입에 의해 공공부문을 확대하게 된다. 결국 세금을 더 거두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끌어다가 현재를 위해 사용한다. 그런데 국가개입의 확대에 의한 공공부문의 비대화가 경제적인 손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공부문이 확대되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가 극성을 부리게 된다. 비용은 당신들이 지불하고, 나는 그저 쓴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확대된다. 이런 생각이 한 사회를 지배하면 선거를 통한 약탈이 성행하게 되는데, 마치 정부에 빨대를 꽂은 듯이 더 많은 이익을 빨아 당기려는 사람이나 단체가 늘어난다. 오늘날 그리스 문제의 실상은 눈에 보이는 재정적자 규모 못지않게 자립자존 정신의 퇴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예부터 그리스 사람은 논쟁을 즐겼는데 서양문명은 2개의 축에 의해 지탱이 된다. 하나는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헬라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과 유대교를 기초로 하는 히브리 전통이다. 전자는 의심과 논쟁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대문명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에 후자는 절대 가치와 순종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이 떠나는 나라는 몰락하고 그들이 이주하는 나라는 번성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미국 등의 부침사를 면밀히 따지면 그 이면에는 이주 유대인이 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그 이면에는 비대한 공공부문의 확대와 정부 개입이 있다. 헬라 전통과 히브리 전통이 현저하게 다른 역사의 궤적을 그려가는 것을 보면서 전자는 어떤 것이라도 상황에 따라 합리화될 수 있다는 상대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정부가 나를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그리스와 로마의 위기 깊숙이 놓여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시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이 그리스 위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문을 갖는다.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이 흔들리는 사회는 그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스, 이탈리아의 위기에서 떠올리게 된다. 생각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여기에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좋은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수 아닌 인간 서장훈, 보여주고 싶었죠” (0) | 2015.07.20 |
---|---|
내가 시를 읽고 외우는 이유 (0) | 2015.07.11 |
박원순과 유승민과 연평해전 (0) | 2015.07.09 |
양선희의 시시각각] ‘마녀사냥’하기 좋은 때 (0) | 2015.07.01 |
중앙시평] 유승민과 ‘조직의 질서’ (0) | 2015.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