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집 세 권에 시에 대한 다채로운 비유와 뜨거운 사랑을 담은 이성복 시인. 그는 “시에 대한 공부는 자기 안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몸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하찮은 것 중의 하찮은 것. 그런데 없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도, 뛸 수도 없는 것. 9일 청계천로에서 만난 시인 이성복 씨(63) 는 시가 그런 것이라고 했다. 세 권의 시론집(문학과지성사)을 내면서 맞은 간담회 자리에서다. 시인은 올 초 학교를 떠난 뒤 대구의 주택에서 나무를 키우기도, 서툴러서 더러 죽이기도 하면서 지내왔다고 일상을 전했다. 》
그는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강단에서 30여 년 시를 가르치다 퇴임했다. 시론집 3권은 그의 시 창작 수업을 옮겨놓은 것이다. 형식이 다채롭다. ‘극지의 시’는 산문집, ‘불화하는 말들’은 시 형식, ‘무한화서’는 아포리즘이다. 제목부터 궁금했다.
“‘극지(極地)의 시’라는 제목은 시가 지향하는 자리, 시인이 머물러야 하는 자리가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극지’라는 점에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불화하는 말들’은 책에 실린 다음의 시 형식 글귀와 맞닿아 있다. ‘예술은 불화(不和)에서 나와요./불화는 젊음의 특성이지요. (…) 우리가 할 일은/자기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오직 시(詩)하고만 화해하는 거예요./그것이 우리를 헐벗게 하고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안겨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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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 강의를 옮긴 시론집 세 권.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성복 시인은 말솜씨가 유려하다. 사례와 비유가 화려하거니와 다정한 말투에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 한참 지나서야 무게감이 느껴지기 일쑤다. 구어로 된 그의 강연이 책으로 엮어 나온 건 녹취와 노트 정리 등 학생들의 도움이 컸다. 입말이 바탕이 된 책이어서 술술 읽힌다.
“‘강의록’이라고 하려니 한 수 내려보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고,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려니 너무 비장해 보였다. ‘시론’이라고 달아 놓으니 편안해지더라.” 세 권을 ‘이성복 시론’으로 묶은 것을 설명하면서 시인은 저자 약력과 저서 목록에 대한 사연도 들려줬다. 20여 권의 시집과 산문집 등을 낸 시인이지만 시론집의 앞 장 약력엔 시집 한 권, 산문집 한 권만 적혀 있다. 맨 뒷장에야 책 목록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저자 약력에 저서를 이것저것 나열하는 건 마뜩잖고 해서… 그래도 내 책이 뭐가 나왔는지 궁금한 독자는 돋보기 들고 찾아봤으면 해서 실었다. 하하.”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