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수확을 했다.
지난 5월 초에 모종하고 120일 만이다.
적정 수확기 점검을 해 보니 110~120일 정도라고 한다.
줄기가 무성해서 주인장이 예초기로 잘라내고
다시 줄기와 비닐을 거두어 내고서야 호미로 캘 수 있었다.
아침 9시부터 6명이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했다.
년 중 가장 보람있는 날인데. 가을날이라는 게 바람 불면 시원하고
바람이 없으면 얼마나 뜨거운지
구름이라도 자주 지나가 준다면 좋으련만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높은 날이었다.
오가면서 구경하는 사람들고 신기해하고 우리도 신기하고
땅속 사정이야 모르겠고 심고나니 여축없다.
몇 포기 안남았는데 지칠대로 지친 모습들이다.
풋고추만 따 먹겠다고 이웃들에게 맘껏 따 먹으라고 심은 것이
붉은 고추를 벌써 30근 정도 말렸다고 한다.
점심식사후 피곤은 밀려오고
아파트 담벼락 아래 돗자리 깔고 하늘을 이불삼았다.
오가는 행인들이 없는 곳이다.
있었던 들,, 어쩔까.
길바닥은 서늘했고 피곤한 몸을 누일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돗자리 깐 길바닥도 매트리스 못잖은 시간이었다.
지난 일요일 거제도로 벌초갔던 지인이 횟감을 준배해온 김에 밭에 모였고,
고구마를 한 번 캐보자 하고 캔 것이 깜짝 놀랐다.
얼마나 크게 자랐는지 수확기가 지난 게 아닌가 하여
이틀후 모여 수확하게 된 거였다.
.
이 녀석은 지난 봄 고구마를 심을때는 겁나서 밭에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삽질!까지 한다.
밭에만 오면 저를 반기는 어른들이 많아서 그런지 부끄러워하면서도 싫은 내색은 없다.
작물들처럼 지난 봄보다 쑤욱 자랐다.
익힌 고구마만 보다가 밭에 고구마를 보니 "딱딱해 딱딱해"라고,
어른들이 밭에 오면 "들어가 보세요" 라고 인삿말을 건넬 줄도 안다.
한 아이가 잘 자라려면 동네 어른 30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탈무드에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줄 아는 이 녀석은
아마도 고구마 덩굴처럼 당기는 인연들이 많으니 잘 자라지 않을까
고구마가 한개도 열매 맺지 못한것도 있고, 포도송이처럼 한 묶음인 것도 있다
무엇이 잘 못 된 건지는 모르지만 같은 시기에 심었어도
비슷한 장소라도 뿌리 내린 흙 사정에 따라 다른 것 같았다.
우리가 새 순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잘 놀 줄 안다는 건 잘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잘 논다는 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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