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내가 아는 박완서

구름뜰 2016. 1. 22. 08:22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뵌 건 경기도 구리시 아천리에 있는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 댁에서일 것이다. 그 즈음에 이 선생님은 바깥일을 통 안하시고 글만 쓰고 계셨다. 대학원 과정 비슷한 수준의 한문 강의를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계셨는데 그때 박완서 선생님이 학생이 되어 그곳엘 왔다. 나는 한문 지식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고, 전혀 그곳에 끼일 형편이 아니었는데 오로지 그 마을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공부가 허용되었다.


 당연히 나는 제일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 박 선생님은 스승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는데도 공부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시키면 읽고 뜻을 풀었다. 어쨌든 티 안 내고 고분고분한 학생이었다. 첫 번째 대면에서 내 맘에 들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실컷 유명해진 사람이었는데도 어린 학생이 갖는 순하고 다소곳한 모습이어서 대하기가 즐거웠다.


 하루는 시외버스를 타고 천호동 장에 가서 뭔가를 잔뜩 사가지고 다시 시외버스 정거장으로 가는데 거기 박완서 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날은 한문 공부가 있는 날이었다. 박 선생님은 한문 공부하러 우리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나도 급히 물건을 사들고 공부하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주 반가웠다. 우선 인사말로 뭐라고 말하기 전에 기쁨이 내속에 가득 찼다.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를 학교 밖, 예상 밖의 장소에서 뜻밖에 만났을 때의 기쁨이었다. 몇 번 보지도 않은 때였는데 그렇게 기쁜 건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선생님을 실제로 뵙기 한 10년쯤 전에 친구 하나가 내게 그에 대해서 얘기했다. '여자의 특성을 초월한 드문 여자'라면서 관심을 가져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의아해하면서 그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박완서 박완서 . . . . . ,"


 박완서 선생님을 늦게 안 건 그의 등단이 늦은 탓도 있고 내 책읽기 습관에도 이유가 있을 듯싶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그런데 그 책의 종류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 정음사, 을유문화사, 학원사 등등으로 출판사 위주의 독서가 전부였다.


 당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정음사나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게 없으니 모르고 어른이 될 수박에. 그 흔한 일본 소설들, '빙점'이니 하는 소설들을 고등학교 때 다 돌려 읽는데도 나는 읽지 않았다. 또 대학에 들어가서는 교과서 외에는 한글로 된 글을 읽지 않았으니 작가 박완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학교생활이 완전히 끝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면서 신문을 읽게 되면서 '비로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의 소설은 읽지 않았다.






 나는 개성에서 태어났다. 박완서 선생님도 개성 근처에서 태어났다. 맨 처음 그 사실을 알고는 대번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게는 개성이라는 말이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그립고 황홀한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나는 개성에서 5년쯤 살았는데 그 기간 동안은 행복하여 환상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로 기억되어 있다. 박완서 역시 그래서 우선은 '쏙' 좋았다.


 나는 누구에게나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말하면서 살아왔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박완서 선생님에 관해서는 맨 처음부터 달랐다. 그를 대하면 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조심성이 저절로 생겨났다. 막 대하다가 나쁜 관계가 되면 내가 슬퍼하거나 죄의식에 괴로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 아닌 나빠지면 안 되는 관계,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어려운 사이인 것처럼 느껴졌다.


 박 선생님과는 여러 번 여행에 대해 얘기도 했고 권유도 있었지만 나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 나는 어디든 떠나는 걸 무서워한다. 그러면 박선생님은 나를 '추장'이라고 놀리면서 웃는다. 좋은 비유다. 아주 작은 인디언 마을의 추장, 추장은 절대로 여행하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작고 큰 일들이 박 선생님과 나 사이에도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그런 일들은 또 다 잊혀져갔다.


 어느 날 선생님 댁에서 목화씨 한 뭉치를 보았다. 문익점 전시회에서 가져왔다고 첫째딸이 말했다. 나는 목화씨 덩어리르 보는 순간 갖고 싶은 맘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박 선생님의 외손자 대여섯 살 난 중혁이한데 "세 개만 줘, 하나를 심으면 혹시 싹이 안 나올지도 몰라. 세 개만 줘......,"나는 중혁이를 따라 다니면서 같은 말을 열 번도 더 되풀이해서 졸라댔다. 중혁이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또 거절했다. 나는 목화나무가 자라나서 아름다운 푸른 열매를 맺고 그 뽀얀 색채로 꽃을 피울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고, 그래서 막무가내로 졸라댔다. 그러던 중 중혁이가 변소엘 갔다. 어쩌나 하는 순간에 박 선생님이 얼른 씨앗 몇개를 집어 내게 주셨는지 내가 가지라고 했는지....., 나는 그때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그리고 박 선생님이 내게 보여준 분명한 순간의 행동이 내게는 평생의 행복으로 느껴졌다.


 예기치도 않게 아파트로 이사 왔기 때문에 화분에 그 씨를 심었다. 예상대로 오직 한 개의 씨만 싹을 텄다. 겨울이 되도록 일곱 개의 잎만 가진 볼품없는 나무로 자랐을 뿐이다. 그래도 꽃망울이 맺혔다. 혹시 한겨울에 꽃이 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목화꽃 나무만 보면 박 선생님을 생각한다. 목화꽃 닮은 부용꽃만 봐도 박 선생님이 떠오른다.

-점선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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