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수상]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賞 수상… 한국인 최초 ‘세계 3대문학상’ 쾌거
“아름다움과 잔혹 결합된 놀라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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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있는 것은 책과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소설가여서 책은 지천이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10세 때 아버지가 안 쓰는 타자기를 주셨다. 자판의 ‘ㄱ’과 ‘ㅡ’와 ‘ㄹ’이 탁, 탁, 탁 소리를 명랑하게 내면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다. 아마도 작가로서의 운명의 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가 한강 씨(46)의 유년기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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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은 22년째 걸어온 그의 작가 인생에 대한 놀라운 격려의 자리였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통킨이 연단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더 베지테리언 바이 한강(‘The Vegetarian’ by Han Kang).”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한 씨와 이 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 씨(29)가 함께 일어섰다. 눈물을 터뜨린 사람은 스미스 씨였다. 작가는 긴 손가락을 뻗어 동반자를 다독였다.
이 장면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작품이 겹쳐진다. 그는 흰 손가락으로 종이 피아노를 치던 어린 소녀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애타게 조르지 못하고 종이로 피아노를 만들어 가만가만 쳤던 그다. 내성적인 반면 표현하려는 것을 온몸으로 조용히 담아내려고 분투해온 작가였다. 그 모습은 폭력에 저항하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한 수상작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와도 닮았다.
▼ 영문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도 공동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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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연결한 것으로 주인공 여성과 그의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각각 쓰였다. 통킨은 수상작에 대해 “놀랍도록 힘이 넘치는 작품이며 음산하면서도 잔혹한 소설”이라면서 “그러면서도 매우 아름답게 쓰였고 번역도 뛰어나다”고 평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밝힌 그의 수상 소감은 차분했다. 말수가 적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는 자신이 쓰는 글처럼 아름답고도 묵직한 문어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작가다. 그는 이날 천천히 또렷하게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책을 쓰는 것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고통스럽고 힘겨웠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 작품에서 내가 던지고자 한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고 말했다. 특유의 환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는 만찬이 열린 시각 새벽을 맞은 고국을 향해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보냈다.
아버지이자 선배 소설가인 한승원 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눴음은 물론이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른다”며 “아버지를 보면서 일찌감치 글쓰기가 기쁨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상금은 5만 파운드(약 8480만 원)로 수상자들이 반씩 나누게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수상]“좋은 번역자-편집자 덕분에 수상
한국문학에 좋은 일 더 많이 생길것… 제자리 돌아가 읽고 쓰는 생활 계속”
17일(현지 시간) 이른 아침에 연락이 닿았다. 시상식 다음 날이었다.
한강 씨(46·사진)는 “(수상을) 예상하지 않았다”면서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채식주의자’에 대해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여성의 이야기”라면서 “이때의 인간은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을 말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감이 어떻습니까.
“매우 놀랍고 기쁩니다. 번역자인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하는 상이어서 더 기뻐요.”
―수상을 기대했는지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년 11월에 새 소설 ‘흰’이 영국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겸사겸사 가벼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자신의 작품의 어떤 부분이 심사위원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고 보는지요.
“좋은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난 덕분입니다. 한국문학에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를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했는데요.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식물이 되려고 합니다. 이 극단적인 서사를 통해 저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려고 했습니다. 어려운 질문이지요. 인간에 대한 질문은 저에게 중요한 것이라서 앞으로도 계속 질문하면서 써 나가고 싶습니다.”
―폭력성에 대한 저항이 주요 메시지인가요.
“인간의 폭력에 대한 고통이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우리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향하게 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쓴 후 더욱 그 고민을 더듬어 가게 됩니다. 인간의 폭력에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어떤 출발점이자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소년…’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와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담은 소설로 올 초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됐다.)
―국내외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는 한국문학을 읽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아주 훌륭하고 좋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에도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한국의 동료 작가들, 선후배 작가들을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한국문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쁨을 독자들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시상식이 막 지났는데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요.
“어서 제 자리로 돌아가서 읽고 쓰는 생활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게 제일 중요한 건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다음 주에 새 책이 출간돼요. 제목은 ‘흰’입니다. 배내옷, 달떡, 안개, 눈보라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책이에요. 산문과 시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책인데, 저는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컬래버레이션으로 전시회도 열 예정입니다.”
런던=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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