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마다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있어 마음만 내면 문학기행이 가능한 시절이다. 지난 주 선산도서관에서 주최한 문학기행에 장옥관교수(시인)와 경주에 있는 동리.목월 문학관을 다녀왔다. 교수님이 준비한 자료도 알찼고 오며가며 해주신 이야기도 많았는데 게을러서 이제서 올려본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고 있다.
문학관에서 뵌 목월이다. 대표시 '나그네'가 보인다. 경주 출신인 두사람의 문학관이 한 곳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서 왼쪽으로는 목월이고 오른쪽으로는 동리의 생애가 펼쳐져 있다.
목월은 그가 좋아했던 수주(樹州) 변영로의 호 중에 수자에 포함된 나무 木과 김소월의 月을 따 지은 것이라고 한다. '문장'지에 '산그늘'과 '어스름'을 투고 1940년에 등단. 이때 정지용으로 부터 "북의 소월 남의 목월"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세사람의 추천은 정지용의 '문장'지를 통해서 였고, 40년대 '인문평론'과 '문장'지 양대 산맥은 우리 문학의 꽃을 피우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문장'지가 발굴한 신인들 중에서 정지용의 영향을 청록파 세 분이 골고루 받은 셈이라고 한다. '청록'이 푸른 사슴을 의미 실재하지 않은 상상적 동물이고, 생명파처럼 삶의 고뇌를 노래하지는 않았으며, 상적 삶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태도였다고 한다. 개인적 특성이라면 조지훈의 '불교적인 분위기와 전통적인 것'에의 향수가 짙었고, 목월은 '민요적 전통 아래 향토적인 자연의 세계'를 즐겼고, 박두진은 '성서적 상상력을 바탕 갈등이 해소된 자연의 세계'를 희구했다고 한다.
장옥관 교수님이 이미지 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미지..우리나라 대표적인 이미지즘의 시작은 정지용이다. 일본 유학파였던 지용에게는 스승이 딱히 없었다는 교수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시 '가정'이다.
아마도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무녀도'라는 작품이 인상적이 었던 작가, 문학관 나들이 때마다 느끼는 건 작품을 읽은 것이 너무 적다라는 것이다. 나름 알려지게 된 한 두 작품으로만 그 작가를 이해할 뿐인 것이 늘 아쉽다.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김동리 선생님 문하생은 워낙 많았다고 한다.
박경리 문학관에서였던가.
그녀가 젊은 시절 동리 선생님께 시를 써서 갔더니
"자네는 소설을 써보게"라고 했고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목월 생가에 세워진 동상이다.
뒤란으로 루드베키아가 많았다.
채송화나 백일홍 봉숭아 이런 꽃들이 피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정
지상에는
아홉 컬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이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퇴근한 가장이 마당에 들어서면서 섬뜰에 놓인 신발을 보는 심상이 잘 느껴지는 시다.
'가정'을 처음 읽었을 때 섬뜰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아홉식구의 신발이 생각났었는데
여기 목월 생가 섬뜰에 고무신이 있었다.
이 신발은 그집 다섯째나 여섯째 쯤 될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검정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있었다.
내가 어릴적에도 고무신을 신었다.
얼마나 질긴지 닳아지질 않아서 한번은 작정하고 섬뜰에서 동갑내기 사촌과 돌에다 문댄적이 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안되어서 생각해 낸것이 칼로 찢었다 뒤꿈치를 .. 저녁에 밭에서 일끝내고 온 엄마한데 오지게 얻어 맞은 기억까지...
참 질길 고무신!
여름철 땀이 나면 발이 쭉쭉 미끄러져서 고무신이 막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
도랑에서 빨래하다가 비누칠을 해서 씻으면 말갛게 세수한 얼굴 같이 되던 고무신
엄마 아버지가 일하는 밭에가면 고무신 벗어놓고
저만치서 밭고랑 차고 일하시던 어머니 아버지 모습도 있다.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ㅅ
장옥관 시인이 오며 가며 근대 국문학사부터 많은 얘기들을 해 주셨다. 돌아가며 시를 읽고 그 시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특히 이미지즘에 대한 얘기가 좋았다. 지용이나 소월에서 부터 김춘수까지 듣고 그 중에서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그 당시 지식인들은 좌익사상으로 북으로 갔고, 대부분 지식인들이 북에서 처형된 얘기까지 그리고 해금을 통해 알려진 지용에 대한 얘기까지 .. 한국 문단의 병폐등에 대한 얘기도 해주셨다. 남쪽에 남은 시인들이 크게 조명된 부분에 대한 것도 공감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