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
논설위원
인명진(71)은 외국인 노동자 신도가 많이 다니는 구로동 갈릴리 교회의 은퇴 목사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선포했는데 첫 번째 구속자가 장준하·백기완이었고 두 번째 구속자가 당시 20대 성직자였던 인명진이었다. 그는 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촉진한 YH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의 중심 인물이었다. 87년엔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킨 국민운동본부의 대변인이었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80년) 때 40일간의 잔혹한 고문은 인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박정희와 싸웠던 인명진이 지금 박근혜의 당의 대표가 되어 99명 의원을 호령하고 있으니 여기엔 어떤 역사의 뜻이 있는 걸까.
“내 눈엔 새누리당이 군중한테 끌려 나온 간음녀 같더라고. 사람들이 돌을 들고 다 치려고 하는데 내가, 명색이 목사가 어떻게 가만히 있나. 여인한테 가서 ‘너 인생 잘 못 살았다’ 하고 회개시키고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인명진 목사가 비대위원장 취임 열흘 동안 서청원(74·8선) 정치 8단과 벌인 일진일퇴 ‘인적 청산 드라마’를 보면서 그의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인 목사와 늘 접촉하는 갈릴리 교회의 한 지인을 만났더니 “그가 친박당에 들어간 것은 목회자로서 신앙적 결단이었다”며 입당 결심 때 말했다는 심정을 들려줬다. 지난해 12월 29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로부터 비대위원장을 추인받은 뒤 인명진이 한 취임 연설의 핵심 문장은 “새누리당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였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발톱은 남아 있다. 서청원은 정치적으로 쉽게 죽는 사람이 아니다. 정당 대표 두 번에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두 차례 옥살이를 하고도 우뚝 재기했으며 차기 국회의장 후보군에 올라 있는 거물이다. 서청원은 자진 탈당을 요구받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성직자가 왜 죽음을 강요하는가. 인명진이 당을 떠나라”고 반격했다. 폭로와 공조직, 대중 집회를 기민하게 활용하는 입체적인 생존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서청원의 대응은 집권당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시베리아 같은 벌판에서 겪을 온갖 공격과 시련에 대한 본능적 방어행위 같은 것이다. 인명진을 쫓아내고 당권을 확실히 장악해 차기 정권에서 근성 있는 야당 한번 해보겠다는 야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사휴의(萬事休矣)! 내가 보기에 서청원의 저항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닮았다. 격렬한 몸짓일수록 깊이 말려들어 기운만 빠진다. 애초에 인명진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꾀는 서청원이 냈다. 자기에게 우호적인 듯하고 세력 없는 비정치적인 은퇴 목사라 다루기 쉽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인명진을 잘못 본 것이다. 인명진은 정치는 안 했지만 역사의 싸움에서 여러 번 승리를 경험했다. 국민을 바라보는 큰 싸움에서 승리의 요체는 대세와 희생, 회개와 용서에 있다는 믿음을 인명진은 갖고 있다.
인생의 동선과 삶의 결에 차이가 있는 만큼 두 사람의 성패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서청원은 성직자가 왜 내 생명을 보호해주지 않느냐고 떼를 쓴다. 그러나 인명진은 큰 사고를 낸 집단에서 우두머리 몇 명쯤은 죽어줘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서청원의 조직적 반발과 태극기 대중과의 연계 시도는 대세를 거스르고 기회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인명진은 서청원의 말마따나 ‘소신 있는 보수주의자’다. 그는 보수를 살리기 위해 역사가 새누리당에 파견한 트로이 목마일지 모른다. 박근혜와 서청원이 이끌었던 보수는 의리와 패권, 기득권과 이익 수호에 능한 괴상한 보수였다. 그 보수는 무너졌다. 그렇다고 보수적 유권자가 쉽사리 진보 성향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폐허가 된 보수에서 새싹을 보고 싶어 한다. 새싹을 틔우려면 정치무대에서 박근혜·서청원이 사라져 줘야 한다. 영화 쿼바디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성난 민중의 좁혀지는 포위망을 두려워하는 네로 황제에게 그를 끝까지 사랑했던 한 시녀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괴물같이 사셨으니 죽을 때만이라도 황제처럼 죽으시라.”
“내 눈엔 새누리당이 군중한테 끌려 나온 간음녀 같더라고. 사람들이 돌을 들고 다 치려고 하는데 내가, 명색이 목사가 어떻게 가만히 있나. 여인한테 가서 ‘너 인생 잘 못 살았다’ 하고 회개시키고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인명진 목사가 비대위원장 취임 열흘 동안 서청원(74·8선) 정치 8단과 벌인 일진일퇴 ‘인적 청산 드라마’를 보면서 그의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인 목사와 늘 접촉하는 갈릴리 교회의 한 지인을 만났더니 “그가 친박당에 들어간 것은 목회자로서 신앙적 결단이었다”며 입당 결심 때 말했다는 심정을 들려줬다. 지난해 12월 29일 새누리당 전국위원회로부터 비대위원장을 추인받은 뒤 인명진이 한 취임 연설의 핵심 문장은 “새누리당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였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발톱은 남아 있다. 서청원은 정치적으로 쉽게 죽는 사람이 아니다. 정당 대표 두 번에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두 차례 옥살이를 하고도 우뚝 재기했으며 차기 국회의장 후보군에 올라 있는 거물이다. 서청원은 자진 탈당을 요구받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성직자가 왜 죽음을 강요하는가. 인명진이 당을 떠나라”고 반격했다. 폭로와 공조직, 대중 집회를 기민하게 활용하는 입체적인 생존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서청원의 대응은 집권당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시베리아 같은 벌판에서 겪을 온갖 공격과 시련에 대한 본능적 방어행위 같은 것이다. 인명진을 쫓아내고 당권을 확실히 장악해 차기 정권에서 근성 있는 야당 한번 해보겠다는 야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사휴의(萬事休矣)! 내가 보기에 서청원의 저항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닮았다. 격렬한 몸짓일수록 깊이 말려들어 기운만 빠진다. 애초에 인명진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꾀는 서청원이 냈다. 자기에게 우호적인 듯하고 세력 없는 비정치적인 은퇴 목사라 다루기 쉽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인명진을 잘못 본 것이다. 인명진은 정치는 안 했지만 역사의 싸움에서 여러 번 승리를 경험했다. 국민을 바라보는 큰 싸움에서 승리의 요체는 대세와 희생, 회개와 용서에 있다는 믿음을 인명진은 갖고 있다.
인생의 동선과 삶의 결에 차이가 있는 만큼 두 사람의 성패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서청원은 성직자가 왜 내 생명을 보호해주지 않느냐고 떼를 쓴다. 그러나 인명진은 큰 사고를 낸 집단에서 우두머리 몇 명쯤은 죽어줘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서청원의 조직적 반발과 태극기 대중과의 연계 시도는 대세를 거스르고 기회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인명진은 서청원의 말마따나 ‘소신 있는 보수주의자’다. 그는 보수를 살리기 위해 역사가 새누리당에 파견한 트로이 목마일지 모른다. 박근혜와 서청원이 이끌었던 보수는 의리와 패권, 기득권과 이익 수호에 능한 괴상한 보수였다. 그 보수는 무너졌다. 그렇다고 보수적 유권자가 쉽사리 진보 성향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폐허가 된 보수에서 새싹을 보고 싶어 한다. 새싹을 틔우려면 정치무대에서 박근혜·서청원이 사라져 줘야 한다. 영화 쿼바디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성난 민중의 좁혀지는 포위망을 두려워하는 네로 황제에게 그를 끝까지 사랑했던 한 시녀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괴물같이 사셨으니 죽을 때만이라도 황제처럼 죽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