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구효서의 '풍경소리'다.
수상작이 년초에 발표 되고 나면 '문학사상'에서 작품집이 나온다
해마다 4월이면 독서회 선정도서로 읽는 단골 토론 도서다
'이상' 작가가 상징하듯, 고급독자!라도 쉽지 않은 작품들이다.
'풍경소리'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전 작품들 보다 난이도는 덜하면서 깊은 작품같다.
그외 수상작들도 재밌고 젊은 작가들의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구효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기쁘고,
세번 네번 다섯번 읽으면서 되새김질 해보는 맛 또한 끝내줬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블로그에 리뷰로 올려보리 년초에 세운 계획!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라고... 기록물의 소중함을 알기에..
미혼모였던 엄마가 죽고 미와는 혼자 남았다.
엄마는 말기에 병든 몸으로 외국인과 결혼 한국을 떠났다.
새아버지에게 엄마의 부고를 들으면서 엄마가 데리고 간
고양이(상철이)의 울음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듣게 된다.
이후 미와는 환청(고양이 울음소리)에 시달린다.
이국땅에 남겨진 상철이와 자신의 동일시 같다.
끈은 다 떨어져 버린 것 같고 상철이 울음소리만 들리던 그때
문득....
두달 전,
"달라지고 싶다면 성불사 풍경소리를 들으라"고
했던 친구 서경이 말이 떠오르고, 노트 하나만 들고 성불사에 들어간다.
폰을 끄고 사흘째 되는 날부터가 이 소설의 도입부다.
미와는 성불사에서 적는다 무엇이든,
소리에 관한 쓰기가 재밌다.
소리는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일.
도심 아닌 성불사에도 무수한 소리가 있음을.
노트에 적는 소리 슥삭슥삭까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들, 자신이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일만 했다면
이제는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대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쓰기 위해 집중하는 일을 통해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는 과정도 재밌고,
다른 소리가 들어오는 만큼 환청이 사라지는 걸 미와는 알게 된다.
환청이 '풍경소리'라는 객관적상관물로 대체,
결국 소리는 소리로 치유되는 걸 암시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되듯이
또 한편 이별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보여준다.
고교시절 배웠던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라는
공간으로 책만 펴면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어 들인다
노래의 배경 성불사는 북한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성불사가 있다.
,
사람........죽여요?
네?
소설같은 거 쓰는 거 아닌가요?
주승은 소띠였고 80세 였다. 목소리나 그런 것은 소심한 여덟 살.
글 ........쎄요.
미와는 서른 두셋쯤 보였다.
풍경소리 들으러 온 미와(아름다운 기와)에게
주승(주지스님)은 소설 쓰러 온줄 알고 물었고
그 다음 미와의 독백이 이어지는 문장이다.
소설? 소설이 아니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소설을 알지 못했으니까. 소설이라니. 읽는 건 싫어하지 않았지만 쓸 줄 몰랐고, 쓸 엄두를 내지 않았고, 낼 필요가 없었고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소설이려면 어찌해야 하는 지 몰랐다. 진짜,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그러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거지. 글쎄요, 라고 대답하길 참 잘했어, 응 그런 생각을 하며,P15
그리고 생각했다. 어떤 것을 소설이라 여기기에 주승은 저런 말을 하지? 또 생각했다. 주승이 읽는 소설은 뭘까? 어떤 거지? 그러다 아무 생각도 않기로 했다. 아무 생각 않기로 하면 아무 생각도 안났다. 주승도 아무 생각 없이 물은 건지도 모르잖아. 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쉽게 생각이 멈추었다. 정말 그랬다. 과연 달라지는 걸까. 나는 생각을 멈추다니, 생각이 멈추다니. 사흘째 풍경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풍경소리 P17
말하자면 구효서의 이런 문장들이 불교적이기기도 하면서
독백을 따라가면서 문장을 되새겨 보는 맛이 좋다
글 ........쎄요라고 답한, 그렇게 말하길 잘했다는
글쎄에 대한 내면의 심상이 이렇게 쭈욱 펼쳐져 있다.
글쎄라는 단어가 주는 말은 경계일 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때,
절대 그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 말하기 싫을 때,
알지만 완전히 알지도 못할 때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지도 않을 때
찾아보면 많겠다
글쎄라는 말
감탄사지만 다음에 오는 말이 더 중요한 말
'글쎄 그렇다니까요'는 호응이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쐬기 박는 느낌이다
왜 좌자예요?
첫날 미와가 물었었다.
이곳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좌자가 정색하고 뚝뚝 끊어서 말했다. 절 마당 팽나무 그늘 아래서였다.
......
성불사에 오는 사람들은 '왜' 라는 말을 빼고도 무슨 대화든 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왜 라는 말을 쓰지 않는 곳,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그렇게 하는 곳
미와는 첫 날 이후 왜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만큼 좌자(공양간에서 밥해주는 공양주)와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왜 라고 묻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
관계에서 '왜'라는 물음이 올라올 때
궁금해서 묻기도 하지만 대체 저이는 왜 저런가 그런 마음이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왜를 성불사에서는 입밖에 내지 않는다
내지 않으니 당연히 왜라는 마음이 생겼났다가도 소멸되리라.
우리는 '왜'가 생기면 곱씹어서 되새김질까지 하니 ...원..
성불사 식구들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말하자면 몸으로 사는 삶(실천하는 삶)이다
,
그냥 들어주는 것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가 '왜?' 라고 묻지 않는 것과
묻고 싶을 때는 "그렇군" 하고 말해야 한다는 걸
좌자는 미와에게 알려 준다
성불사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구나"로 살고 있음도 본다.
이 방식은 미와가 엄마에게 가졌을 수많은
"왜'를 '그렇구나'로 받아들이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왜라고 물은들 얼마만큼 알것이며 얼만큼 답할 수 있을까.
알고 싶어하는 일과 알려주고 싶은 일이 같기라도 할까.
'당신은 어떤걸 가치 있게 여기나요' 보다
내성향과 맞거나 맞지 않거나로 평가한다
.
'인간은 매우 상대적이다' 라는 말의 의미는 그래서 슬픈 일이다.
내가 그것에서 한발작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걸 직면할 때면
막막해지는 기분이라니...
모르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인한 오류
신뢰, 감히 내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들에서 불거진...
드러난 수많은 사례들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며칠간 나를 사로잡았던 생각들을 문득 뒤집어 보았다.
감정도 환경도 생각도 습관이 된다는 걸
예전에 안 그렇다가 지금 그렇다는 건
내게 다른 습관(환경)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하니 내 환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다시 미와로 돌아가 보자
탄생을 캐묻고 원망하고 저항하고 소리를 질러도 반응하지 않던, 이승 사람 같지 않던 엄마,감각기관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억지와 고집에 참 고요히도 무감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생크림과 휘핑크림 전문가였다는 건 언제나 수수께끼였다.
중략..
정확한 유지방률과 교반의 속도와 강도 그것이 휘핑크림 노하우의 전부였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엄마의 맛을 흉내내지 못했다. 교반감각뿐 아니라 크림의 맛과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그토록 민감했던 사람이 어째서 나에게 만은 무감했는지. 말이 없었는지. 매정했는지 아, 싫다. 나를 볼때마다 어쩔수 없이 불편한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정말 얼마든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그러는 거냐고 물으면 엄마는 말이없었고 여일하게 매정했었지..
엄마가 살아계실 때 가졌던 '왜' 부분이다
휘핑크림을 잘 만들었다는 건 최선을 다해서 생활고를 해결한 엄마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예민했던 사람이 그만큼 딸에게 무심하게 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딸은 뒤늦게 좌자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세상 모든 최선에 대하여
최선이라고는 전혀 생각못했떤 부분을
어느 순간 뒤집어 보면
그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는 것 같다.
늘 그런 부분, 보이는 것 너머 본질을 짐작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수시로 내 감정에 빠진다.
우물에 빠지듯이..
'그날 교반한 것 중 가장 잘된 크림을 집으로 가져왔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그중 일부를 떼어 내 입술에 묻혀주었다. 나는 그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일찍이 안 것은 엄마의 휘핑크림이 세상에 다시없는 맛이라는 것이었고, 내가 오랫동안 몰랐던 것은 집을 뛰쳐나가지 못했던 이유가 레고 때문인지 휘핑크림 때문인지에 대한 거였다.
좌자의 음식맛을 통해서 미와는 엄마가 가장 잘했고
엄마의 휘핑크림 맛을 기억해 낸다.
좌자는 절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미와가 엄마 이야기까지 틀어 놓게 되는 대상이 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것처럼 처음엔 틀어놓지만
왜 없이 좌자는 묻지 않고 '그렇구나'만 해준다.
좌자와 함께 일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래 맛있으면 되었다는 투의 느긋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좌자와 함께일 때 나도 모르게 그런 상태에 이르곤 했으니까. 그녀가 일러준 새 이름과 꽃 이름도 실제 이름과 어쩌면 커피와 풀뿌리만큼의 거리가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다고 느긋한 마음의 상태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중략
좌자는 곧장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커피 같은 것도 되나요? 라고 물었을 때도 되다마다요. 라고 곧장 대답했다. 그리고 곧장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그런 식, 말과 동작 사이에 틈이 없는 사람, 동작과 동작이 곧장 이어지는 삶, 그 사이에 있게 마련인 생각이나 사고나 번민 같은 게 날렵하게 제거된 사람. 머뭇거리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 엄마는 말과 동작, 동작과 동작 사이의 틈이 비정상으로 비대해진 사람. 그래서 말과 동작 동작과 동작이 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없이 멀고 멀어지기만 하다가, 끝내는 서로를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런 사람이었던 엄마
엄마와 좌자의 다른 점
그렇지만 그 맛에선 좌자의 요리와 엄마의 휘핑크림이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로서는 나름의 최선이었다는 걸 미와는 알게된다.
미와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배고플거라며 맛있는상을 차려준다.
미와가 배고픈걸 어찌 알았어요 라고 물었을 때
어떤 얘기를 할 땐 배가 고파지잖아요 라고만 한다.
배가 고파지는 얘기..
두말없이...
없으면 모를까 있으니 마음껏 먹으라며,,
잊었던 엄마의 휘핑크림맛이 생각나는 밥상을 받는다.
먹으면서 미와는 사레들려 눈물을 쏟아내지만
엄마의 맛과 좌자의 맛이 일맥상통하는 걸 안다.
그리고 맛있다 맛있다고 예찬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어째서 엄마에겐 한 번도 이래보지 못했을까. 왜 한번도 고개 끄덕여 주지 못했을까 생각을 하며, 작은 이유 때문에 더 큰 이유를 몰랐던 나 자신과 세상에 없던 휘핑크림의 맛을 떠올리며 나는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 대목이다.
환청은 사라지고 풍경소리를 넘어 들리지 않는 소리(적막)도 듣게 되는 미와!
스물 네살이 될 때까지 자신을 낳아준 엄마였는데도 이해도 용서도 안되던 엄마
미와사 좌자에게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 그리고 좌자의 '그렇구나'로 가능해지는 얘기다.
절간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
어떤 것도 내 생각 내 마음 이전에 존재하는 건 없다는 걸
불편도 불안도 다 내문제라는 것을 어찌 인정하지 않겠는가.
문득 챙겨든 책속에서 이런 문장이
나를 위로한다.
무엇을 혐오할지 생각해야 한다.
나의 지성이 싫어하는 꿈인가
아니면 나의 감성이 증오하는 행동인가
태생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먼 행동인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누구하고나 거리가 먼 꿈인가.
둘 다 혐오하기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꿈과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면 둘을 한데 섞는다.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둘 다 혐오하기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둘을 한데 섞는다.
이런 서슬프런 인식이 따를 때
우리는 덜 아프고 덜 어리석을까.
더 아플까.
세상은 고요한것도 같도 어지러운 거 같기도 하고
그때 그때 내 마음 따라 달라보이니..
어쩔까. 둘을 한데 섞어서 살며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만이 나를 위로해 준다.
구효서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풍경소리' 외에도 대표작 '모란꽃'도 재미있었고,
나를 혐호하게 될 박창수에게/이기호 이 작품이 특히 재밌어서 풍경 다음으로 여러번 읽었다.
그외 김중혁 /스마일
조해진/ 눈 속의 사람
윤고은/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한지수/코드번호 1021
모두 젊고 발랄한 작가들의 필력에 놀랐다.
처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읽었던 몇년 전 나는 해독이
이렇게 안되는 책이 있나 싶었다
도무지 어렵고 이입 안되는 소설들만 골라서 수상작으로 뽑혔나 싶었다.
한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고 맛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대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과 그 외 수상작 편이 실려있어서
한권에 7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실험작 같기도 한 이 책이 이제는 꽤나 기다려 지는 책으로 바뀌었으니
내 편식 성향도 개선된 것이리라.
내년에는 어떤 작품이 올라올 지..
소설같은 인생
소설같은 사회
현실이 소설같고
소설이 현실같다면
그 괴리감이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놀란다.
지난밤 '나를 혐호하게 될 박창수'의 주인공이 되는 꿈까지 꾼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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