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언젠가 이 의인화를 버릴 거야/ 김혜순

구름뜰 2017. 4. 30. 07:43

 


인간적이라는 층위가 있다

정상인이라는 층위가 있다

현대인이라는 층위가 있다

*애록인이라는 층위가 있다


 이 층위에서 조금만 게으르면 -먼지를 쓸고, 옷을 다리고, 씻고, 인사하고, 알은체하고, 거리로 나서고, 깃발을 흔들고 등등-이것을 끊으면 층위 아래로 떨어진다. 먼지가 쌓이고, 옷에서 냄새가 나고, 쫓겨난다. 여기서 더 나가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으면, 제도와 의례를 버리면, 층위는 점점 낮아진다. 우리는 태어난 이래 어떤 층위에 걸쳐져 있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이렇게 두 발로 서서 얼굴을 허공에 두고 매달려 있다. 바위에 매달린 절 한 채처럼, 몸을 절벽에 매달고 있다.


 않아가 태어났다는 것은 않아가 의인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않아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인화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않아가 살아간다는 것은 꾸며낸 가상의 삶을 희망으로 삼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의인화를 버릴 순간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에서부터 끊없이 자신의 의인화 작용을 가동하고 있다. 짐승으로, 죽음으로, 비정상으로 떨어지려는 '나'를 끌어올려 이 문명 속에서 버팅기고 있다. 이렇게 언어의 그물 위에 떠 있다.


 않아가 의인화된 지금 이렇게 몇 줄 적고 있는 시간, 않아가 끊임없이 현재의 시간 위에 않아라는 의인화를 투척하는 시간, 그 안간힘.

 않아는 언젠가 이의인화를 넘어갈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다른 것, 언어를 넘어선 거기가 밀려올 거라는 것도 안다.

벌거벗은, 인간의 근원을 넘어선 거기를마주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않아는 보고 싶은지도 모르겟다. 커다란, 맑은 얼굴이 우주에 넘실대고, 않아에게 더이상 자아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도래하리라는 것.


 않아는 이 의인화를 넘어서려고 시를 쓰면서 역설적으로 수사학을 품는지도 모르겠다. 의인화를 벗어난 곳으로 않아를 멀리 데려가보려고, 않아의 정신이 된 사슬을 힘껏 풀어보려고, 의인화를 벗고 존재한다고 느꼈던, 그 빛나던 무형의 순간으로 않아를 가끔씩 데려가려고, 인간적이고, 정상인이고, 현대인이고, 애록인이라는 층위에서 뛰어내려보려고.


 각자의 우주에 각자가 있으려고

 영혼이 되려고


* 애록 (korea를 거꾸로 읽은 것 aerok)



 


회원이십니까?


엄마의 집에 간다.

엄마가 그 지방에서 오래 글쓰신 분이 않아를 보려고 일부러 방문해왔다고 소개를 하신다.

그는 곶감을 가지고 왔다.

그는 않아에게 물었다.

팬클럽 회원이십니까?

아닙니다.

문인협회 회원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서울 지하철에 시가 붙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엔가 시비가 서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대단히 실망한다.

그는 이제 않아와 말하기 싫어한다.

그렇지만 않아는 그에게 차를 마시라고 한다.

그는 차를 조금만 마시고 간다.

그는 엄마의 딸에게 대단히 실망하고 간다.

곶감은 놓고 간다.




 

신선 식품처럼


학생이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응모한 제 작품이 본심까지 올라가 신선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작품이 신선해지나요?

죄를 지은 양 한 마리처럼

깨끗해지고 싶은 양 한마리처럼 학생이 말했다.

않아는 대답했다.

않아도 그걸 알면 좋겠다마는

않아가 뭘 알겠냐마는

않아가 보기에 네가 제일 신선하다!

무엇보다도 남다르게 생긴 너의 외모, 너의 열등감, 너의 분노, 너의 욕망,

네가 제일 신선하다.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너를 쓰면 되겠다.

잘 쓰려는 힘을 빼고 너를 쓰면 되겠다.

그러자 학생이 또 물었다.

어떻게 '나'를 쓰지요?

않아는 또 대책도 없이 대답했다.

너에게서 너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그게 바로 시다.

너에게서 네가 떠나면 떠날수록 오히려 네가 잘 보이고 발견되기도 쉽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란 이름을 얻는다.

자신에게서 자신을 벗어나고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시인이다.

-김혜순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