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창을 함께 닫다

구름뜰 2017. 7. 14. 20:28






달이 참 좋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창을 닫다가

엉거주춤 딸아이를 불렀다


이런 건 왜 꼭

누구한데 말하고 싶어지는 걸까?


아이가 알아차렸는지

엉거주춤 허리를 늘여 고개를 내밀었다

-장철문






느티나무 아래서


여름이 되자 매미들이 머슴처럼 울었다

느티나무 그늘 속에서였다

내 딸아이는 어려서 그 밑에 쉬를 하고는 했다

그 애도 커서 이제는 처녀가 되었지만

느티나무가 아니라면 예의바른 그 애가

그런 실례를 할 리 없었을 것이다

느티나무를 두드리기 위하여 소나기는

후드득후드득 아프게 왔고

새들은 아침을 소란스럽게 했으며

가지에 몸을 다친 바람들은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울었다

가을에도 그랬다

멀리서 보면 동네가 근사해서

아파트 값이 너무 올라간다고

관리소 사람들이 이파리를 털거나

그의 몸을 잘라내기도 했다

최근에 사람들은 느티나무 때문에 벤치를 만들었으며

거기에 앉기 위하여 노인들은 나이를 먹었다

-이상국





안녕을 안경이라 들을 때


너는 안녕이라는데 나는 안경이라 듣는다

너는 안경을 안녕이라 바루어 주고

나는 안녕을 다시 안경으로 고쳐 쓴다


안 보여? 너는 눈썹을 모은다

네가 내 흐린 안경알을 문지르는 동안

우리 사이에

사이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안경을 끼니 안녕의 세계가 선명해 진다

네가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경의 세계와 안녕의 세계는 얼마나 다른가

나는 처음 보는 세계로 들어간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안경이 자꾸 콧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나는 안경을 끼고 안경을 닦고 있다

- 박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