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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줄이기

구름뜰 2019. 1. 30. 08:53

 

상처 입고 싶지도, 상처 입히고 싶지도 않다. 삶의 원칙이나 철학이라기보단 생존을 위해 조심히 껴안고 사는, 본능적인 다짐에 가깝다. 하지만 다짐이란 보통 지키기 어렵단 걸 알기에 하는 행위고,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관계 맺기나 끊기에서 둘 중의 하나나 둘 다를 범하고 만다.
 
지난 몇 년간 관계 맺기나 끊기는 대부분 두 가지 영역에서 일어났다. 일 그리고 연애. 일에서 생기는 상처는 회사 동료나 취재원으로부터 존재 자체 혹은 들인 노력이 무시당할 때 주로 발생한다. “몇 년 차죠?” “알려준다고 사실대로 쓰겠어요?” “넌 뭐 하고 다니냐” “너 이런 말 도니까 좀 조심해” 같은.
 
연애는 훨씬 더 상처받기 쉬운 관계 맺기다. 더 먼저 혹은 더 많이 좋아하게 됐는데 그 마음을 무시당하면, 누구나 쉽게 상처받는다. 실연이나 거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엔 직접적인 것과 묵시적인 것이 모두 포함된다. 직접적 거절이 더 상처가 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묵시적 거절, 즉 외면은 그 상처가 곧장 드러나진 않지만, 지독한 불안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종일 휴대전화를 놓지 않는 걸 아는데 8시간 후에 “메시지 온걸 몰랐다”는 답장이 오거나, 저녁 7시에 보낸 카톡에 다음 날 아침 “피곤해서 일찍 잤다”고 답한다거나. 실제로 바쁘거나 피곤한 게 아니다. 모두 묵시적 거절이다. 이걸 늦게 알수록 더 오래 고민하고 더 자책하다가, 더 상처 입는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주고받는 방법은 뭘까. 정답은 물론 못 찾았다. 모든 상처가 구체적 맥락과 알아채기 힘든 긴장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되는, 상처를 줄이는 조건 두 가지 정도는 알 것 같다. 예의와 솔직함이다. 이 둘을 적절히 녹이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몇 년 차죠?” 대신, 긴 시간 메시지를 읽지 않고 외면하며 마음 졸이게 하는 대신, 예의를 갖추되 솔직한 마음을 담아 빨리 말해주는 건 어떨까. 상처가 없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론 한결 나을 것 같다.
 
이는 개인과 개인이 벌이는 일이나 연애가 아닌, 유명인 및 사회지도층과 대중 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그들과 함께 일한 사람들, 그들을 좋아하고 믿어온 사람들에게 조금 더 예의를 갖추고 솔직해지는 일. 혹여 일이 잘못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거나 신문 사회면에 오르게 됐을 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그럴싸하게 돌려 말하는 대신, 외면하고 침묵하는 대신, 그간의 일과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예의를 지키는 일. 그게 상처를 줄이는 방법이다. 
- 중앙일보 윤정민 콘텐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