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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아마존 회장의 스캔들 대응법

구름뜰 2019. 2. 15. 20:46

불륜 이어 나체 사진 협박 받은 아마존 베조스

거짓없고 원칙있는 대응으로 공수 전환시켜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명망 있는 권위지 워싱턴포스트(WP)의 오너인 제프 베조스. 그가 숨기고 싶은 은밀한 사생활을 들켜버리고 말았다.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고약한 협박도 받았다. 지금껏 쌓아온 명성과 권위, 어쩌면 가정생활까지 전부 망가질지 모르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그처럼 잃을 게 많은 유명인이 아니라 범부(凡夫)라도 그저 협박에 굴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수치스런 사생활을 스스로 드러내고 세계 최고의 정치권력과 맞설 수도 있는 선택을 했다. 그만의 스캔들 대응법이다.
 
베조스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을 스승으로 모시며 작가를 꿈꾸던 매켄지와 데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약혼하고, 다시 3개월 만인 1993년 결혼했다. 매켄지는 작가의 길 대신 베조스 회사의 첫 공식 회계사가 되어 그를 세계 최고의 부자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렇게 4명의 아이를 두고 25년을 함께 산 두 사람은 그 어떤 부부보다 특별히 가깝고 미래지향적인 관계(『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였다. 아니,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모든 게 달라진 건 지난 1월 9일 베조스 부부가 올린 트위터 한 줄이었다.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친구로서 삶을 공유하겠다.”
 
영혼의 동반자 매켄지와의 느닷없는 이혼 발표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친트럼프 성향의 아메리칸 미디어(AMI)를 모회사로 둔 타블로이드지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폭로가 나왔다. 이혼 뒤엔 베조스의 불륜이 있다며 그가 유명 앵커 출신인 불륜 상대자에게 남긴 자극적인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돈 많고 힘 있는 한 사내의 그렇고 그런 진부한 불륜 스토리다.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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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은 이제부터다. 베조스는 초대형 스캔들을 대하는 남다른 자세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거짓말과 침묵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았고, 원칙을 벗어난 대응은 일절 하지 않았다.
 
재산 분할로 아마존 경영권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기사화를 통보한 지 48시간 만에 이혼 합의를 끌어내는 등 자기 주변을 먼저 정리했다. 이를 시작으로 위기관리의 교과서 같은 행보를 보여줬다. 오랜 지인인 전문가에게 의뢰해 어떻게 사적인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흘러 들어갔는지 경위 조사에 나섰다. AMI 측 변호사가 ‘스캔들 폭로엔 아무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공개 발언을 하라는 요구와 함께 그들이 확보했다는 베조스의 나체 셀카 사진 리스트가 담긴 협박 이메일을 보내게 된 배경이다. 베조스는 이런 내용을 숨기는 대신 사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며 협박받았다는 사실까지 공개해버렸다.
 
대중에게 알리는 방식도 남달랐다. 베조스는 WP 대신 자신과 무관한 온라인 매체 ‘미디엄’을 택했다. 지난 2월 7일, “갈취와 협박에 굴복하기보다는 창피를 무릅쓰고라도 대응하겠다”며 ‘사양할게요, 페커씨(No thank you, Mr. Pecker)’라는 제목의 9분 동안 정독할 분량의 긴 입장문을 올렸다. 여기엔 트럼프에 불리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에게 입막음용으로 기사 독점권을 사버린 AMI의 과거 이력 등도 담겼다. 한마디로 베조스를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AMI 페커 회장,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글이었다. 협박받았다는 사실만 공개해도 충분할 텐데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확보했다는 낯 뜨거운 셀카 사진 9장의 자세한 묘사가 담긴 협박문 원문까지 가감 없이 공개했다.  
     
즉각 공수가 역전됐다.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침묵 모드에 들어선 동안 워터게이트 주역이자 『폭로』로 트럼프 심기를 건드린 WP의 노장 밥 우드워드가 베조스의 대응을 칭찬하는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악시오스’ 보도). “매우 용기 있고 올바른(very gutsy and definitely right) 대응”이라고 평가한 우드워드는 심지어 이 사건을 ‘워터게이트의 부활’이라고 비유해 베조스의 정치권력 배후설 제기에 힘을 실어줬다. WP도 협박 폭로 후 사설을 통해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부도덕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베조스가 스스로 원칙의 선을 지킨 덕에 WP가 떳떳하게 사주를 협박한 저질 언론을 비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베조스는 평소 “관점의 차이는 IQ 80점의 차이(큰 차이)에 준한다”는 선구적인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의 말을 종종 인용했다. 자신의 스캔들에 대처하는 일련의 태도는 그가 얼마나 남다른 관점으로 사안의 본질에 다가서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덕분에 위기관리가 필요한 모든 기업과 개인이 두고두고 참고할 대응 사례 하나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