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빈 시인(본명 장지현)이 세 번째 시집 '총총난필 복사꽃'을 출간했다. 두 번째 시집 '까치 낙관(시학)'을 펴낸 지 7년만이다. 총총난필(悤悤亂筆)은 '특별히 의도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썼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작품해설에서 '총총난필로 쓰는 게 복사꽃인지, 시인인지, 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대상과 시인과 시가 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장하빈의 첫 번째 시집 '비, 혹은 얼룩말(2004년)'에 이별·부재의 슬픔·애잔함이 묻어나고, 두 번째 시집 '까치 낙관(2012)'에 소요와 묵상이라는 자연친화적 정서가 깔려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말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 평화롭고 온유한 세계를 음미하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장하빈 시인은 2008년 봄, 도심을 떠나 팔공산 중턱에 집을 지었다. 이따금 도시를 오가며, 사람과 세상을 만난다. 스스로 찾아 간 팔공산이고, 도회로 나와 만나는 사람 역시 '의무적인 만남'이 아니라 '만나고 싶어 만나는,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가 이번 시집에서 그려낸 자연은 넉넉하면서 아름답고, 사람은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
시간이 머문 자리마다
꽃피었다
손톱엔 봉숭아
얼굴엔 해바라기
목에는 맨드라미
늦가을비 사이로 오락가락
시간의 주름 더듬는데
눈가엔 또 구절초 화들짝 피었다
이마에 맺힌 주름
꽃피고 꽃진 자국일까
물기 어린 시간이 스친 흔적일까
(중략)
주르르
참았던 빗물이 전신을 타고 흘러
주름이 꽃피는 순간이다'
-주름꽃- 중에서
주름꽃은 사람 몸에 피는 꽃이고, 시간이 머문 자리라면 어디나 피어난다. 시인은 팔공산 능성동의 나무와 꽃을 매개로 '살아온 자신의 세월'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새로 식구가 된 며느리를 나무에 비유해 이렇게 노래한다.
'새아기 맞는 날, 앞마당에 살구나무 한 그루 심었다
갸름한 얼굴이 살구 같아서일까
화사한 얼굴빛이 살구꽃 닮아서일까
그래, 그래(중략)
새아기 나무야
햇빛 물 공기 살뜰히 다스리거라
낮에는 새 불러오고 밤에는 달 깃들이거라
새로 움돋는 꽃자리마다 조랑조랑 열매 맺거라' (하략)
-새아기나무- 중에서
이 작품은 실제(며느리를 맞이하고 살구나무를 심은 일)와 자신의 바람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경철 평론가는 "이 작품은 현실주의 작품이면서 자연주의 작품으로 시인의 삶과 희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 시인은 정년퇴직을 10년쯤 앞두고 교편을 접었다. 그리고 팔공산에 집을 짓고 '다락헌(多樂軒)'이라 이름 붙였다. 물리적으로 '다락이 있는 집'인 동시에 '많은 즐거움을 누리는 집'이라는 의미다.
그는 "느리게 빈둥거리며, 자연과 생명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텃밭을 가꾸고, 마당의 풀을 뽑고,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이 그에게 큰 즐거움이다. 이번 시집에는 그런 일상과 계절이 빚어내는 자연의 무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번 시집에 자연을 노래한 시만 묶은 것은 아니다. 도회를 들고나며 보고 듣고 느낀 일상도 꾸밈없이 그려내고 있다. '나의 아메리카, 아메리카' '삼수장어' '키스 공원' 등은 도회에서 시인이 머물거나 마주친 것들이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분분한 꽃잎은 풀린 옷고름 같아서', 제2부 '사막은 저 혼자 어둑어둑 빈집으로 돌아가지', 제3부 '십자가가 목에 걸리는 저녁이 와서', 제4부 '흰작살 해변에 조각구름 걸어 놓고'이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대구 매일 5,18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