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할 수 있는 날에 예상할 수 있는 선물을 하는 사람보다는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선물하는 사람이 더 고마운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사람보다 “그냥 좋아”라고 답하는 사람에게서 더 깊은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의 천재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선물을 한다. 그들의 선물은 비(非)기념일에 찾아온다. ‘선물=기념일’이라는 공식에 길들여진 우리가 “왜? 오늘 무슨 날이야?”라고 물을 때, 그들은 “그냥” 하며 웃는다. 우리가 달력을 볼 때, 행복의 천재들은 자기 마음을 본다. 그리하여 우리가 몇 안 되는 기념일을 챙기느라 많은 날들을 그냥 흘려보낼 때, 그들은 자기 마음속 감사의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우리가 소수의 기념일을 핑계 삼아 다수의 비기념일을 평범하게 만들 때, 그들은 모든 날들을 비범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행복 천재들은 기념일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때나 그냥 선물한다.
행복 천재들은 우연을 선물한다
우리의 선물이 예상한 딱 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면, 행복 천재들의 선물은 상상을 넘어선다.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이 우리의 선물이라면, 그들은 어느 날 문득 여러 장의 손편지를 보내온다. 우리의 신년 인사가 받는 사람 이름만 자필로 써넣은 연하장이라면, 그들은 직접 전화를 걸어 새해 덕담을 건넨다. 우리가 회사 로고가 들어간 기념품을 선물할 때, 그들은 받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 넣은 선물을 전한다. 우리의 선물이 우리를 영웅으로 만든다면, 그들의 선물은 받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
그냥 하는 선물이라지만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선물에서는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난다. 그들의 선물은 철저하게 준비된 우연이다. 그들은 상대의 취향을 흘려보내지 않고, 상대의 가족 이름을 흘려듣지 않으며, 무엇보다 상대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선물은 오래된 즉흥이며, 계획된 우연이다. 그들이 그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원래 있던 거라고 말한다고 해서, 오다 주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냥 선물하는 행위는 우연을 선물하는 행위다. 인간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幸福)이라는 단어의 한자 풀이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니다.
행복을 전파하는 ‘그냥’의 힘
행복의 수준은 관계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고, 관계의 수준은 ‘그냥’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아무런 용건이 없어도 그냥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당신은 외롭지 않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그냥’은 행복의 천재들이 사용하는 삶의 비밀 병기다. 그들이 어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그냥의 힘을 깨달았을 리 만무하다. 행복 천재들은 자신의 삶이 수많은 요인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로, 때로는 그들과의 갈등으로 오히려 더 충실해지고 있음을 그냥 알게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냥 선물하고 싶은 것임이 분명하다.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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