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현금지원은 총선용 현금살포
국민을 사람 아닌 '표'로만 보는가
비상시엔 비상한 상상력·방법 필요
소비자도 절약보다 소비에 나설 때
위기엔 평시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사람이든 사회든 스스로 적나라한 바닥을 드러내며 정체를 폭로하니 말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펜데믹으로 번지면서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다. 선진국인 줄 알았던 일본의 불투명성, 미국의 무대책, 유럽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의료 시스템. 전염병이 이들의 분식된 이미지를 ‘깔끔하게’ 벗겨냈다.
한국은 중국 이외의 나라에선 처음 지역 집단감염으로 번졌지만, 이후 행로는 중국이나 미국·유럽과 달랐다. 지역 집단감염 초기부터 위험군 전수조사와 투명한 정보공개로 대응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이나 의료진의 실력과 헌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확인됐다.
가장 돋보인 건 시민이다. 지역 집단감염이 일어난 대구에선 탈출 러시도 없었고, 시민들은 자신을 스스로 격리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대구를 돕겠다며 들어가는 행렬이 더 길었다. 전국 각지에서 각종 비품을 챙겨서 보냈고, 외지의 의료진들도 자원해서 들어갔다. 대구와 세 시간 떨어진 광주와 전북의 여러 지자체가 대구에 부족한 병상을 지원하겠다며 확진자에게 병원 문을 열었고, 시민들은 환영현수막을 걸었다.
구두닦이로 모은 재산을 위기극복 성금으로 내놓는가 하면, 풀가동되는 마스크 공장에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공장 일을 돕는다. 시민들은 조용히 긴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고, 당국의 대응 지침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일탈자들도 있다. 하나 소수여서 거의 모든 일탈과 난동 사례가 곧바로 뉴스가 될 정도다. 여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단톡방에서도 ‘한국인은 참 대단하다’는 자부심을 표현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한국 시민의 수준은 무척이나 높았다.
한데 이렇게 훈훈해진 마음에 찬물을 확 끼얹는 장면은 예외 없이 정치권에서 촉발된다. 최근에 ‘확 깼던’ 장면은 재난 기본소득제안에 “총선용 현금살포”라고 맞받아친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발언이었다. 이후 보수야당 정치인들은 ‘표퓰리즘’ 발언을 이어갔다.
‘의원님들’의 눈에 국민은 사람이 아닌 ‘표’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위기 앞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국민이 돈 100만원 받았다고, 주권을 팔아넘길 거라는 말인가. 어차피 그 돈은 여당의 돈이 아니라 국민 세금인데 그것도 분별을 못 한다고?
생계가 흔들리는 면세점 이하 서민들에게 현금을 주지 말고, 세금 내는 고소득층 국민의 세금을 깎아주자는 보수야당 정치인의 ‘감세안’ 주장은 차라리 일관성은 있다. 차라리 재경부처럼 ‘재정건전성’을 들어 반대했다면, 우리 보수의 수준에 이처럼 절망하진 않았을 거다. 이분들의 빈곤한 상상력의 수준은 지하 아래에서도 바닥이 찾아지지 않는다.
이번에 추경으로 11조7000억원이 통과됐다. 이걸로 될까. 물론 이런 재경부 공무원의 ‘새가슴’이 여태껏 한국의 건전성을 지켜온 바탕이 되었을 테니 이해는 한다. 개인적으로도 전 국민 100만원 재난기본소득 지원을 찬성하진 않는다. 재정건전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끓어서 졸아들어 타들어 가는 솥에 물 한 국자 부어선 해결이 안 된다. 한 바가지 정도는 부어야 한다. 사회적 재난 상황에 평상시 방법으론 안 된다는 말이다. 두 달 이상 멈춰선 경제를 돌리는 데 가장 필요한 건 현금과 상상력이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일정 기간 경제가 멈춤으로써 군데군데서 돈이 돌지 않아 생긴 ‘미스매치’로 인한 경제적 곤란 상황이 언제까지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다.
홍콩 정부는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인당 1만 홍콩달러(약 150만원)씩 주기로 했다. 호주 정부도 100억 호주달러(약 8조원)를 현금으로 푼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급여세 면세안에 “사람들 수중에 현금을 쥐여주는 게 낫다”는 트윗을 날렸다. 이들은 누구의 마음을 사려고 이러는 걸까?
지금 서민과 영세 소상공인들은 당장 생계비가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현금이다. 지원한 현금은 시장에 풀려 경제를 돌릴 것이고, 상당 부분은 세금으로 환원될 것이다. 물론 돈을 마련하는 규모를 줄일 필요도 있다. 이러면 어떨까. 월급생활자와 소득 9, 10분위의 국민을 제외하고 현금을 지원하는 것. 또 성금 말고 특별세금 100만원 자원납부자를 모집한다면…. 나는 자원하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원할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10~20년 전 ‘잃어버린 20년’ 시절의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현금지원을 했지만 받은 돈을 저축하는 근검절약 탓에 실패했던 사례를 거론한다. 당시 저축할 여유가 있었던 일본인들의 사정과 지금 단기 현금 고갈에 시달리는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매일 벌어야 먹고 사는 서민들이 두 달이나 벌이가 끊겼는데, 그 돈을 저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금은 덜 어려운 소비자와 기업들도 지금은 근검절약이 아닌 돈 쓸 궁리를 해보면 어떨까. 큰 기업은 협력업체도 좀 돌보고, 소비자는 옷도 사고, 미용실도 가고, 가구도 좀 사면서…. 내가 특별세금이라도 자원 납부하겠다는 건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다. 당장 현금 돌려막을 수 있는 사태를 키워 경제 펀더멘털마저 흔들릴까 두려워서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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