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비가 흠씬 내리고 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도랑가로 달려갔었다. 황톳물이 거세게 몰아쳐 내리는 걸 보는 일이란 멀리서 봐도 긴장감을 더했다.
도랑은 빨래터이기도 했지만. 들일 끝내고 귀가하던 어른들이 손 발 고무신까지 설거지해 가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어쩌다 먹거리를 씻으러 오면 윗물에서 씻는 , 도랑물 사용에도 어른들을 보면서 따라 배운 예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큰 물이 지고 나면 도랑가 잡풀들은 결이라도 있는 양 순하게 누웠다.
다음날이면 물은 맑아졌고 도랑은 비가 올 때마다 그렇게 대청소를 당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은 일거양득이란 얘기지만 아마도 비 온 지가 오래되어 가물 때라야 도랑 청소가 용이했을 듯싶다.
지난밤 빗소리에 몇 번이나 깼다 오후쯤 그쳤는데 도랑물이 궁금해 우산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를 돌았다
물은 깨끗해졌고, 부지런한 농부는 논둑에 비닐을 깔아 물길을 터 놓았다. 논길 들길을 따라 간 생태공원엔 연꽃이 흐드러졌다 사진 찍기에 좋은 때다 물에 있으나 젖지 않는 꽃. 꽃도 잎도 제일 싱그러울 때다. 비와 잘 어울리는 꽃. 칠월 이맘때 비 오고 난 뒤라야 담을 수 있는 풍경이다.
빗소리와 함께 듣는 음악도 좋고, 떠난 비를 님 그리듯 담는 일도 재밌다 그때 아니면 놓치는 일 사진도 타이밍이다.
도랑물에 손을 담가 보는 이도 없는 세월을 살고 있다. 맑은 게 그리운 건 도랑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my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깍지 & 콩꼬투리 (0) | 2020.10.11 |
---|---|
삶은 감자 (0) | 2020.07.05 |
우두령 고개 (0) | 2020.05.19 |
보리밥 (0) | 2020.05.07 |
그들은 함께 호두를 먹었다 (0) | 2018.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