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우두령 고개

구름뜰 2020. 5. 19. 15:47

3번 국도 김천에서 거창으로 가다 보면 경북 끝 마을과 경남 첫 마을 사이에는 우두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경상남북도를 가로지르는데 고개가 높아 그 능선에 서면 산을 등정한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인다. 특히 대덕면 쪽으로 보이는 뷰가 장관이다.

고갯길은 국도가 생긴 이래로 아직도 비포장이다. 엄마는 스물두 살에 이 고개를 넘어 경북 끝마을에서 경남 첫 면소재지 웅양면으로 시집을 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방학이면 동생과 완행버스 타고 우두령 고개를 넘어 외갓집에 갔다. 아랫마을 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가 보이면 그때부터 두근대던 길. 아니 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설레던 길. 하얀 꼬리를 달고 버스가 우리 앞에 서면 동생을 책임지고 외가 마을 앞에 무사히 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차보다 더 흔들리던 눈빛으로 우두령 고개만 나오기를 기다렸었다.

버스가 고개까지 꺼이꺼이 오르고 나면 계속 내리막 길이었다. 도로 폭이 좁아 도로를 꽉 채우고 버스는 내리막길을 내 달렸다. 반대편에서 차라도 오면 어쩌나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가마을 집들이 눈에 들어오면 안내양쪽으로 갔고 차는 주막집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다.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 땅을 딛는 발바닥의 안정감은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기억에 없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겨울 할머니가 친정나들이를 허락하셔서 엄마는 도보로 우두령 고개를 넘어가게 되었다. 집에서 떠날 때도 눈이 내렸는데 한 시간 남짓 걸어 우두령 고개에 도착했을 때는 발목까지 차 올랐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던 트럭이 있었다. 차가 섰고 기사는 얼어 죽으려고 애까지 업고 길을 나섰냐고 혼을 내더라고. 그때 그분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살면서 만나는 은인이라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

거기 어린 소녀가 지천명을 지났건만 아직도 그 길은 그대로다. 민가도 워낙 적은 참 고약한 청정지역이다. 동네 구석구석도 농로도 시멘트로 바뀌는 세월인데 3번 국도 우두령 고개만은 원시! 그대로다.

그곳을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유년기 추억이 고스란히 있는 곳. 옛길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직선도로로 산을 깎고 지면을 높이는 왕복 4차선 도로가 공사 중이었다. 2년 후 완공 예정이라는데 여전히 인적은 드물었다. 찔레꽃이 돌 많고 후미진 곳 여기저기 피어 향기를 더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새순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옛길은 마을 앞을 지나고 외가 마을주막집 앞을 마당처럼 지난다. 초등학교 때 우두령 친구들이 지각 단골이라 아침부터 벌서던 더벅머리 사내아이들도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 사시사철 걸었을 길 신발이나 좋았을까 내 기억에 검정고무신을 신은 아이들도 많았는데 영화 같은 얘기다. 그때 우두령 애들에겐 되려 최우수 등교상쯤은 줘야 하지 않았을까.

아직도 열악하고 공기만 좋은 우두령.. 찔레꽃은 여전하고 길도 여전한 그곳.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길도 있다. 길에도 고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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