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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위로 / 권미자

경자 그 아이는 꽃이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잿빛 냇물 흐르던 광산마을 모래펄은 은빛으로 눈이 부셨다 강구벌레가 지은 오목한 모래 뻐꾸기 집 파 내려가면 뻐꾸기가 뻐꾹, 하며 나올 것 같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놀았다 엄마는 안 오고 등에 업힌 어린것이 자꾸 보챘다 후딱, 일어서려는데 아기 허리가 뒤로 젖혀져 넘어갈 뻔하였다 ' 이놈의 지지배' 밤부터 아기는 신열이 끓고 아팠다 아기가 뒷산에 동그마니 묻힐 때까지 그 일은 비밀이었다 봄날, 몰래 가 본 무덤에 생겨난 보라 제비꽃 아기는 가냘퍼서 제비꽃이 되었나 보다 자꾸만 납작해지는 기억을 꺼내 들고 엄마를 찾아갔던 날 "아기 수명은 거기까진 게야, 니 탓이 아녀' 엄마는 밤바다처럼 말했다 외로울 때면, 마음 저편에 웅크려 앉은 작은 아이가 보인다 비밀은..

책향기 2024.06.07

오늘의 약속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ㅡ나태주

시와 수필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