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친정집 단감 나무는 몇 일전 추석때보다 훨씬 더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엄마 생일 때 쯤이면 단맛도 더하고 얼굴빛도 더 붉어지리라.
왜관 진외삼촌 남새밭에서 가을 걷이 하듯 거둔 농작물 때문에
대구까지 모셔다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신다.
고맙다고 단감이라도 몇개 따주겠다며 사다리를 챙기는 아버지 뒷모습이 어린아이 같다.
작년에 이 사다리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서 사다리를 잡았다.
마음같아서는 많이 따주셨으면 하지만 간밤 꿈을 핑계삼아 무엇이든 그만 그만
조심 조심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친정집 단감은 참 달다.
아버지의 마음 엄마의 마음 만큼 달다
극장을 나오면서 아버지가 그랬다.
"칠십 평생 극장 구경 처음이네"
"사람이 너무 크게 나와서 처음엔 이상하더니 자꾸 보니 괜찮더라"
"벌떼들이 달려드는 모습은 어떻게 찍었는지 신기하더라"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두분에겐 새로운 문화의 충격이었나 보다.
젊은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했던 일들이었건만
내년이면 칠순이신 노 부모님에겐 그것이 생전 처음 해 보신 일일 줄이야!
나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이런 문화적인 혜택을 모르고 사신 부모님,
부모님이 문화의 불모지에서 살고 계심을 왜 생각 못했을까.
엄마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문화의 오지에서 탈출할수 있도록 조금씩 노력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