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공터-다」그리고 극단 레파토리
금오시장 입구 소극장 [공터-다]로 극단 레파토리 단원들을 취재하러 가는 늦은 저녁, 밤비까지 내려 밤기운은 금방 스산해졌다. 하지만 나는 단원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섣부르게 감동할 준비까지 했으니 날씨 따윈 아랑곳 할 여가도 없었다.
그들을 만나면 무엇이든 공감대 형성이 쉬울 것이라는, 그리고 무대체질일 그들이 무대 밖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연습하는 모습은 또 어떨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무대 커튼을 젖히듯 살며시 지하공간 [공터-다]의 문을 열었다.
첫눈에 들어온 단원들의 모습은 공터에서 자유분방하게 노는 아이들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상에서 무대를 한눈에 꿰뚫고 예의주시하는 연출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황윤동 극단대표 35세)에게선 부드러운듯 강직함이 느껴졌다.
60여 평의 지하공간, 무대(바닥)는 그대로 두고 객석(120석)을 계단식으로 올리면서 중간 통로를 넓게 만들어 가끔은 객석을 무대로 쓸 수 있게, 이동이 편리한 좌식의자를 준비해 두었다. (부끄럽게도 무대인 줄 알았던 단상이 객석이고 바닥이 무대라는 것을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공터-다]에서는 왕산허위 연습으로 매일 밤 8시부터 12시까지 강행군이다.
연출자의 사인과 동시에 배우는 극중 인물이 된다. 젊은 아가씨는 순식간에 음전한 조선시대 양반 댁 아낙으로 자태도 말씨도 표정도 변한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그래서 일까. 최병남(허위 아내역)씨는 “조선 양반 댁 부인이라 얌전하고 차분하게 그리면 되지 않을까하는 오만스러운 생각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남성의 성향을 가진 분이라 힘들다.”며 극중 인물과 자신과의 괴리를 메워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왕산 허위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많은 공이 들었다. 황대표는 4년 전부터 구미와 관련한 인물을 재현해내고 싶었고, 이 작품은 작년 6월에 전문작가를 섭외하여 의뢰했고, 9월에 탈고했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보니 올1월이 넘어서야 대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출연자만 70여명에 주연급이 15명 정도 되며 음악도 6곡정도 이번 작품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연출을 맡았으니 온전히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하는 작업이라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젊고 패기 넘쳤으며 행복해 보였다.‘연극은 달콤한 중독’이라고 했던 어느 예술가처럼 그의 지금 모습이 그랬다.
그는 대학시절(금오공대)에 연극동아리(불모지대) 활동으로 연극에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2004년 경북 연극제에서 연출상을 받고,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구미사람으로 문화예술부문상을 수상한 그의 왕성한 활동은 구미지역의 소중한 인적자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여명의 단원 중 연극이 전업인 분은 5명 뿐, 다들 직장이 있단다. 하지만 전업인양 열의가 넘치는 그들! 구미의 공연 예술 발전을 꿈꾸며 노력하는 사람들, 꿈을 잉태하기 위하여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들이 소극장에 심어놓은 염원처럼 [공터-다]는 구미 문화예술의 출발지가 이미 되고 있었다.
구미시민이면 꼭 봐야 할 연극〔왕산 허위〕4/19~20
올해는 왕산 허위 선생 서거 100주년과 구미시 승격 30주년이 맞물린 해다. 이에 구미연극협회가 주최하고 극단 레파토리에서 제작 주관한 창작연극 ‘왕산허위’가 오는 4월 19일(오후8)과 20일(오후4시) 양일간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계기로 일제에 맞서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던 독립운동의 선구자였던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난 1차 을미의병 때부터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한국군 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2차 의병. 일본 통감부를 습격한 ‘서울진공작전’의 실패로 잡혀 이듬해인 1908년 서대문형무소에서 1호 사형수로 처형당하는 시점까지, 주변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을 기본 축으로 픽션화 하여 작품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고 한다.
구미연극협회지부장 (김용원)은 이번에 허위역을 맡고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서대문 형무
역사관’을 단원들과 함께 견학을 갔었다고 한다. 견학도중 참배할 장소는 없나하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다보니 일행보다 앞서게 되고, 일본 단체 관람객들과 코스가 같아지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귀로는 일본말을 들으면서 관람하노라니 그 심경을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왜 진작 와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선생의 생가도 곧 찾을 것이라며 늦었음을 못내 부끄러워했다.
지부장은 또 “자녀들이 구미에 살면서 좀 더 바르고 긍정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고 자라고, 구미를 떠나 살더라도 구미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어릴 때부터 구미에 대한 자긍심이 축적된 아들로 자라길 바란다” 며 지역예술인으로서의 가장 큰 바람은 “어린 새싹들에게 애향심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연일 강행군으로 자식이 한 달 만에 왔는데도 연습에 견학에 아빠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며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래도 연극하는 아빠의 소명의식 같은 것을 아이가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으로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뮤지컬 명성황후도 사후 100주년을 기념으로 창작되어 10년을 넘게 장수해왔다. 관객들에게 내 민족 대한제국을 심어주었고, 생애 최고의 뮤지컬로 손색없을 만큼 감동을 주었으며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나 가거든” 이라는 노래를 듣다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 짧은 시간에 감정이입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명성황후의 삶만큼 처절하게 그녀를 재조명해낸 문화예술인들의 열정 덕분일 것이다.
왕산 허위 선생은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셨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후손들도 일본의 핍박과 탄압으로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으로 흩어졌으며 해방된 조국의 보살핌은 없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구미태생인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 해내는 일만으로도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작품이 구미 공연예술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구미시민들의 관심과 단원들의 열정이 한 묶음 되어 감동하고 공감하여 문화상품으로 인정받고 확대 재생산되어 거듭 발전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제작진의 의도처럼 구미에 사는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꼭 보았으면, 하여 어린새싹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문화컨텐츠로 잡았으면 한다.
내년 [전국 연극제] 구미 유치
내년에는 [전국연극제]가 구미에서 열린다. 서울을 제외한 15개시도 광역시의 대표작들이 구미에 올 것이고 20여 일간에 걸쳐서 연극축제가 열린다.
‘부산영화제’가 부산시민들은 물론 영화인들의 큰 축제로 자리 잡았고, ’거창 연극제’도 벌써 20여년이 다되어가는 ‘국제 연극제’로 자리 잡았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이들 손을 잡고 수승대계곡으로 연극관람을 가는 이런 멋진 낭만을 누가 생각했을까. 고향이 거창인 기자에게는 매매소리만 들려도 가고 싶은 곳 1순위가 거창연극제다.
구미에도 우리만의 문화축제가 시도 되어야 할 때다. 황대표는 “예전의 큰 축제는 서울의 대형기획사에 의뢰하여 통째로 빌려 왔지만 지금부터라도 기획 단계부터 예총이나 지역문화예술인들의 참석을 유도해야 발전할 수 있고 신뢰도 쌓일 것”이라며 그런 시도들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더라도, 급하지만 더디게 가더라도, 그것이 조금씩 구미문화를 살찌워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차기작으로 박녹주와 조심스럽게 박정희를 생각하고 있다는 황대표는 구 오페라하우스로 KTX타고 서울로 문화 예술공연 나들이 가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일선에 있는 예술단체들이 문화예술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생산해내지는 못하는 실정이 제일로 안타까워했다. 문화예술계에도 재화생산이 필요하고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하고자 애쓸 때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신선한 기운들의 영입과 문화발전은 저절로 가능해 질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연극을 하면서 더욱 행복해지더라는 황윤동연출가는 관객이 감동하고 공감할 때 저절로 행복해지더라고 했다. 그의 행복이 피드백되어 다시 관객의 행복이 되기를 바라며, 내년〔구미 전국연극제〕가 시민들의 축제로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기대해본다.
공연문의 054-444-0604
글 이미애
m05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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