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수필

봉사 동아리

구름뜰 2009. 4. 12. 15:34

 애통한 초상집 찾아가는 심정이 이럴까.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창밖 풍경으로도 짐작 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창 물 올라 있었을 벼는 다림질한 듯 누워 있다. 옥수수며 콩 등 밭작물은 넝마를 걸친 듯, 허접 쓰레기들로 휘감겨 있다. 촌락의 좁은 골목길과 마당은 논바닥에서 밀려들어온 개흙으로 질펀하다. 씨감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푸새식 화장실 이라도 예외였다면 물난리가 이렇게 원망스럽진 않으리라.  지독한 악취는 숨구멍을 타고 들어와 내 몸 구석구석을 침범하여 세포 구멍 하나하나를 공격하는 듯하다.

 

 어떤 촌로는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에 뛰쳐나갔더니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둥둥 떠다니더라며, 황망간인지라 눈으로 보고도 건진 것이 없으니 뭘 먹고 사느냐며 탄식을 한다. 소치는 농부는 두 내외가 소를 방으로 들인 덕분에 한 마리도 잃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생명 줄인 소를 무사히 보호한 내외의 눈빛은 지옥에라도 다녀온 듯하다.

 

 안방 장롱까지 덮친 물은 다녀간 흔적인양 안방에도 건물 외벽에도 만수위 때의 자국을 고스란히 그려 놓았다. 마당 가득 가재도구들을 내어놓고 닦기도 하고 말려보기도 하지만 이불이며 물먹은 가구들은 아무래도 다시 쓰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 흙물은 사계절 옷가지에다 덤 주듯 흙더미까지 남겨두고 빠져나갔다.  커튼이며 이불인들 온전 할가. 천이란 천은 모조리 빨랫감이다. 마을은 수돗물마저 끊긴 상황, 가장 시급한 것이 빨래였다.

 

 다행히도 마을에는 주민숫자보다 몇배나 많은 바원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찾아들었다. 공무원 경찰 군인 회사원 여성단체 등 곳곳에서 중방비까지 동원한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우리 거북이 봉사단 일행 50여명은 세탁기 20여대를 동원해 나온 LG전자 팀과 합류하여 빨래를 맡았다.  세탁기가 정자나무 아래 설치되고 마을사람들은 경운기에 빨랫감을 싣고 정자나무 아래도 모여 들었다. 우리는 옷가지마다 한 줌식 들어앉은 흙을 털어내는 애벌빨래를 해서 세탁기에 넣었다. 소방차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가까이에서 본 소방호스의 물줄기는 폭포수처럼 힘찼다. 할 수만 있다면 소방호스로 뻘 같은 저 마당도 가재도구들도 확 씻어내고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려오는 허리를 젖히며 올려다 본 월 하늘은 근심 한 자락 없이 청명하다.  '하늘도 무심 하시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정말 하늘은 무심한 걸까. 분명 어젯밤엔 저 하늘이 날벼락쳤으리라. 하지만 저 하늘은 그대로인 걸, 하늘은 사람 손길 닿는 곳에만 날벼락을 허락한 것일까. 농민들은 어디대고 성토할 대상도 없는 듯하다.

 

 민들은 그래도 봉사자들의 손길이 미치는 곳곳에서 차츰 차츰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봉사자들을 붙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는 이도 있고, "고마워서 어쩌나 고마워서 어쩌나"라며 그 와중에도 웃음짖는 농심도 있다. 우리가 수재민들에게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듯도 하지만 실은 우리 가슴 가슴마다 삶의 교훈이 가득 담기고 사람의 향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빨래가끝난 뒤 간 곳은 흙벽이 완전히 내려앉은 기와집이다. 마침 지하수를 쓸 수 있어서 세간을 모조리 씻고 닦아 박스 포장을 했다. 주인은 창고에다 짐을 보관했다가 새로 집을 지어 입주 할 거란다. 마른일 진일 가리지 않고 종일 쪼그리고 앉아 닥치는 대로 일하다 보니 찜통 더위에 모두들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피곤한 내색은 커녕 수재를 당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봉사를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독거노인이나 소년 소녀 가장 등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볼 때면 내 어려움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의 불행을 내 행복의 가늠자로만 여겼던 내 이기적인 속내가 한없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농사일 처럼 마음 편한 봉사가 또 있을까. 휴경지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하여 불우이웃에게 쌀을 팔아주는 일을 봉사단에선 계속 해 왔다. 물론 흙일 또한 그리 녹록치 않음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땡볕아래 서면 밭은 초등학교 적 운동장 만 해 보인다.  특히 모종하는 날 밭이랑은 100미터 달리기 코스처럼 길어 보인다. 뛰어도 한 참 걸린 저 밭이랑을 언제 다 비밀씌우고 모종은 또 언제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혼자라면 맥이 빠져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여럿이라서 가능하다. 함께 하는 일에서 오는 일의 진전은 현장에서 보면 기대 이상이다. 함께 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는 걸일까. 잘 정돈된 밭이랑을 보면 혼자 다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차각에도 빠진다. 그 착각은 아마도 봉사단원 한사람 한 사람이 혼연 일체가 되어 일했기 때문에 맛보는 것 이게다.

 

 봉사 동아리는 나와 남을 두루두루 아우르게 한다. 내가 거북이 봉사단에 들어올 때의 초심은 '남을 위한 일에 내 손발을 움직여 보리라'라는 단순한 거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동기가 내 마음밭에 씨앗이 된 게 아닐까? 봉사는 내게 자양분이 되었으며 동아리 활동 안에서 찾게 된 긍정적인 인간애는 밖으로는 초여름 신록처럼 쑥쑥 나를 키우는 활력이 되었으며 내 안에선 든든한 뿌리로 자라가고 있다. 이씨앗 덕분에 나는 머지않아 나만의 열매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2003년 9월 15일 태풍 매미 복구현장을 다녀와서 

[구미 거북이 10년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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