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앞둔터라 대구에 갔었다.
외출준비를 하셨으면 하여 미리 전화를 드렸더니, 두 분 다 마냥 좋아하신다. 늘 그렇다! 우리가 가면 좋아하고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신다. 부모이기에 가능한 변함없는 사랑이요, 정서적 지원이다. 두분 다 살아계시고 건강하시니 그것으로 다행이다.
"옛날에는 70까지만 살았으면 했는데.. 내나이가 벌써 칠십이다야.. 그래도 한 팔십까지는 살았으면 좋겠다"
식사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며 웃으시는 아버지. 돌아오는 내내 팔십이란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앞으로 10년 정도 밖에.. 같이 살지 않으니 어쩌다 뵙는것으로 다이고, 1년에 대여섯번 많아야 예닐곱번정도인데.. 이런 시간이 희망사항을 다 채운다 해도 그리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가는 건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이듦이란 갈일을 늘 염두에 두는 사는 일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듦이란 사는 일에 더 담담해지고 초연하고, 소탈해지며 단순해질 수 있으리라.
김점선 (점선뎐)선생은 암으로 올 3월에 이승을 떠났다. 그녀는 살아서 암선고를 받는것이 가장 축복받은 선고라고 했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사고로 이승을 하직하는 준비 안된 젊은 죽음도 있고, 노인성 질환같은 경우는 워낙이 장기전이라 자신도 그렇고 자녀들도 버거운 삶의 무게로 휘청이는 가족들도 종종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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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집 감나무는 볕이 잘드는 남쪽에 있다. 우리집 감나무보다 볕이 덜드는 뒷집감나무 잎이 얼마나 무성하게 잘자랐는지. 가만히 들여다 보니 감꽃도 제법 열글어서 하얀 감꽃봉오리가 새혓바닥처럼 뾰족히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한데 우리집 나무는....
" 아버지, 우리집 감나무가 왜 이모양이래요?"
"내 탓이지.."
지난해 열린 감의 무게로 휘어지며 벌어진 가지들을 미리부터 좀 잡아줄 요량으로 줄기(3개)를 굵은 철사줄로 묶어 두었다고 한다. 그것이 나무의 수액통로를 눌러 고사 시킬뻔한 일이 될 줄은 짐작도 못했다고.... 사람으로 치면 혈관을 눌러 피가 안통하게 한 셈이다. 그렇게 묶어두고서도 앞집 감나무잎이 무성해지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고 그래도 풀어주고 부터는 저렇게 잘 자라주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나무기둥에 묶였던 흔적이 상처로 남았다. 나무가 얼마나 아우성을 쳤을 터인데, 묶으면서 그런 생각을 전혀 못하셨는지.... 그 감나무 아끼고 사랑해준건 그래도 엄마보담 아버지 사랑이 훨씬 컸음을 나무도 알터이니 아버지의 본의 아닌 무신경한 무지!를 이해해주길.....
감나무에 대한 반성문을 쓴다면 아버지도 이렇게 쓸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맏이가 대신 쓴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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