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내 생애 단 한번 - 장영희 수필

구름뜰 2009. 5. 16. 16:36

 

몸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하지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습니다

동그라미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그라미는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하며 동그라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잇습니다

  내 잃어버린 조각 어디 있나요

  하아-디- 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 잃어버린 조각을 찾습니다."

 

동그라미는 때로는 비를 맞고 때로는 눈에 묻히고,

또 때로는 햇볕에 그을리며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으므로 빨리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겹게, 천천히 구르다가 가끔 멈춰 서서 벌레와 대화도 나누고,

쉬면서 길가에 핀 꽃 냄새도 맡았습니다.

어떤 때는 딱정벌레와 함께 구르기도 하고,

또 어떤때는 나비가 동그라미의 머리 위에 내려 앉기도 했습니다.

 

바다와 늪과 정글을 지나고 산을 오르내리던 어느 날,

혼자 떨어져 있는 조각을 하나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워 떨어져 나간 귀퉁이에 맞춰 보니 그 조각은 너무 작아

동그라미의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조각 하나를 만났으나 그 조각은 너무 컸습니다.

다음 조각은 네모 모양이라 맞지 않았고, 또 그 다음에 만난 조각은 너무 날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조각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조각은 자신의 몸에 꼭 맞을 것 같았습니다.

 "맞을까? 맞을까?"

궁금해 하며 맞춰보니 아주 꼭 맞았습니다.

동그라미는 이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몇 배 더 빠르고 쉽게 구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떼굴 떼굴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벌레와 얘기하기 위해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꽃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요.

휙휙 지나가는 동그라미 위로 나비가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노래는 부를 수 있겠지.

동그라미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았답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내해 힐어버린.....조각글.....착낙답네다. 헉."

아! 너무 빨리 구르다 보니 노래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완전한 동그라미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동그라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르기를 멈추고 찾았던 조각을 살짝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몸으로 천천히 굴러가며 노래했습니다.

  "내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 나비 한 마리가 동그라미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장영희 - 내생애 단 한번> -보통이 최고다-부분 

어린 조카의 그림동화에서 읽게 된 -나의 잃어버린 한조각- 동화내용을 발췌한 글

 

 

               어제 오후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추적 추적 아직까지 내리고 있다.

병원다녀 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빌린

하루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코박고 읽은 책이다.  

몇 일전 작고한 선생의 일화들이 곳곳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점이라 선생의 글이 궁금했었다. 

초판발행(2000년)이 오래되어 선생의 요 근래 글들에서 느껴졌던

병마에 관한 글들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후 2013년을 생각하며 쓴 글도 있어서 참 안타깝기도 했다.

샘터를 통해서 법정스님 글을 접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장선생 글이 연재 되면서 알게된 분이기도 하다..

소아마비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하며 사셨지만

'하느님보다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는

눈에 보이지않는 하느님보다

바로 코앞에 있는 인간들 생각에 급급해

 언제나 하느님은 뒷전이었다는

나 편리한 대로 살다가

아쉬울 때만 하느님 찾는 한심한인간이라고.

자신을 평가한 그녀의 솔직한고백은

그녀가 얼마나 인간적이며 따듯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예다.

 

 

 

나는 밤낮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 모습이 보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가로수에서 떨어진 노란 은행잎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어젯밤 다시 전화했지만 당신은 집에 없었습니다

사흘이나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이틀이 지나도록 당신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내 가슴속에 고통을 느낍니다

 

 

나는 단 하루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하룻밤도 당신을 포옹하지 않고 잠든 적이 없습니다.

군대의 선두에서 지휘할 때에도  중대를 사열하고 있을 때에도

내 사랑 조제핀은 내 가슴속에 홀로 서서 내 생각을 독차지하고

내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1788년)

 

 

난 열한시 삼십분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줄곧 바보처럼 안락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이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바보입니다.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나 말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어서

그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노라 바너클에게..1904년)

 

 

사랑하는 당신 나에게 운율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면 합니다.

당신과 사랑에 빠진 이후 내 머리와 가슴속에는 언제나 시가 있습니다

아니, 당신이 바로 시입니다.

당신은 자연이 부르는 달콤하고 소박하고 즐거운 노래와 같습니다.

 (너새니얼 호손이 소피아 피바디에게 ,1839년)

 

사랑하는 당신이여.

내가 무엇을 잘못햇기에 이토록 나를 괴롭히십니까?

오늘도 편지가 없군요.

첫번째 들어오는 우편에도 두번째 우편에도 말입니다.

이토록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다뇨!

당신이 보내는 단 한 글자라도 보면

내 마음은 행복해질 텐데요!

당신은 내가 싫증이 난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낼 수가 없군요.

 (프란츠 카프카가 펠이스 바워에게, 1912년)

 

눈과 서리 사이에서 꽃 한송이가 반짝입니다.

마치 내 사랑이 삶의 얼음과 악천후 속에서 빛나듯이

어쩌면 오늘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잘 있고,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샤를로테 슈타인에게. 1780년경)

  장영희 - 내생애 단한번  연애편지 부분

 

 위 두편은 학생이 쓴 연애편지다.

장선생이 수업시간에 [연애편지]를 주제로 영작케한 리포터다.

그리고 아래 편지들은 우리들이 익히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문호들의 연애편지다.

사랑에 빠지면 학생이든 대문호든 사상가든 정치가든 장군이든

학생들의 편지와 별반 다를게 없음을 위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랑자체가 아주 순수하고 단순한 감정이라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같은 것이기에  그럴 것이라고 책속에 적혀 있다. 

가장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연애편지!

 괴테같은 경우는 연애편지 찬양론자로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까운 삶의 숨결"이라고 했다.

영국의 시인 존 던은 

"편지는 키스보다 더 강하게 두영혼을 결합해 준다"고 했다.

빛의 속도로, 최 첨단 초고속으로 내닫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연애편지) 소멸되어 가는듯 없어져 감은 안타까운 일이다.

연애편지가 없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감성도

 그만큼 메말라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57세 싱글로 살다가 저 세상 천국으로 간 선생은

연애편지 마지막 대목에서

오늘같이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로 바보 같은 마음을 전하는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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