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거야.
그 부피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나던 날 그는 내 차에 앉아 그렇게 말했다.
니 눈물을 닦아주기에 나는 너무 해야 할 일이 많아. 하고 나는 말해버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겁이 났던 것일까.
때로는 나도 내가 한때 가졌던 그 헛된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그와 함께라면 아마 행복 같은 걸 잡을 수 잇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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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까페 입구로 들어서다가
문득 신문을 곰곰이 보고 앉아 있는 그의 옆모습을 보았을 때
그 열중해 있는 자세의 신중함이 보기 좋다는 생각에 가슴이 얼얼해졌을 때
그때 나는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에..
<공지영-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부분
공지영 그녀는 섬세하다.
어떤이는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라고 칭했다.
이 책은 94년 부터 99년까지 그녀가 쓴 단편 7편이 묶여 있다
그 시절의 그녀가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가
삼십대의 젊은 냉철함과 지성으로 갈갈이 까발려 낸 듯하다
그래도 너무 힘이 들어가서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혼돈의 시기를 살았더라도 아픈 자화상을 가졌더라도
이 소설을 읽고 우리가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함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 보내고
그의 환영을 만나는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선
당당히 보냈지만 차마 보내지 못한 여주인공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스스로 선택했건만 쿨함과는 거리가 먼 끝내 어쩌지 못하는 미련들이
상처받은 영혼처럼 애처럽다.
작가는 이부분을 소속감 부재에서 오는 삐딱함 정도로 표현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사랑해도 되는 거지요.
제가 이렇게 마음을 다 줘도 되는 거지요
그는 수줍었고, 조금 떨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 순간의 내 마음을 기억한다.
싸늘이 식어내리던 마음,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어떤 상처 때문에 그러는지 알고 있었지만,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깊숙하게 느끼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나는 대답했다.
그건 제가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군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의 사랑은 당신의 것이어야만 해요.
당신만이 그 사랑을 시작할 수 있고, 지킬 수 있고, 그리고
부수어버릴 수 있어요. 내가 아니라.
그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서운한 그에게 더욱더 냉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 역시 그러리라고. 그가 나를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나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나 자신의 것으로 가지겠노라고.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랑하겠다고,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면 사랑 따위도 버리겠노라고..
어떤 때 나란히 누워서 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8할은 상처로 이루어졌을 그의 몸뚱이를 손가락 끝으로 가만히 만져본다.
상처 때문에 오만해진 그의 자존심과
상처 때문에 주름진 그의 눈가를 내가 사랑해줄 거야.
당신 얼굴이 환해질 때까지 내가 사랑해줄 거야.
생각하다가 나는 소스라친다
나는 더이상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따위의 생각 같은 건
더구나 사랑이라는 걸로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 같은 건 안하기로 하지 않았나하고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 순간이 지나고 일분 후 혹은 삼십초 후, 서로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던 그 손가락으로
우리는 서로를 가장 치명적으로 상처입힐 수 있는 것이다. 확률은 반반이다.
그 확률은 어떤 이성적 예지도 필요하지 않다
이유는 오직 하나, 사랑하고 있으니가. 상처입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므로
무엇이 그에게 가장 상처입힐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순간에 언제나 더 사랑한 사람이 더많이 드러낸 사람이 더 상처입히니까.
나는 다시는 그런 끔찍함 속으로 나 자신을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몇번 그런 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이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가락을 나는 냉정히 떼어낸다
하지만 내가 냉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에 지불해야 할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나는 이제 어느정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체 누가 나에게 그렇게 상처입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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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내 탓이라고 말해야 할 그들은 절대로 내 탓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내탓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지영-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조용한 나날 부분
<조용한 나날>의 여주인공은 모든 사랑이 '허망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현재는 이렇게 냉철하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싸늘하게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무주의의 실체는 사랑에 상처받은 그녀만의 대처법이다
소설속에서 그녀의 전남편은
바닷가 어느 여관에서
"그 여자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는 없어요.
나는 그 여자와 나누었던 그 느낌을 죽을 떄까지 잊을 수 없어요
그걸 각오해도 좋다면 나와 사귀어도 좋아요."
그의 삶을 붙들었던 내 삶은 덫에 걸렸고 이제 몸부림 칠 긴 시간만 남았다.
그녀는 그를 선택하고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그 둘은 결국 이혼한다.
그의 첫사랑도 이혼을 하고 둘은 결혼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사실은 모든 여자들이 바라는 꿈의 역할을 그는 현실에서 해냈고
그것이 한때 나의 남편만 아니었다면,
아니 내가 그 때(첫사랑 때문에 자신을 더 사랑할수 없음을 고백받았을 때)
내 마음을 그렇게 순순히, 그렇게 날것인 채로
그에게 주지만 않았다면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 나만 빼고, 또 그녀의 남편도 빼고 생각한다면
축하한다는 내 말은 진심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는 그 바닷가에서 내게 분명 경고했었다
빨간 불이 켜진 거리를 미친듯이 달려갔던 것은 나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다니,
그것은 그의 탓이 아니었다.
그저 우린 운이 나빴을 뿐이다. 하지만 죽는다고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공지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조용한 나날부분.
그리고 그와 그의 첫사랑과 아이까지
셋은 사업실패 등으로 동반자살을 한다.
그 병원앞을 지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의 일상은 조용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망가트린다.
상처를 준 그 누군가때문이라고 전제를 두지만
결국 자신이 자신을 상처입힌다 <조용한 나날>은 섬뜩하다
소설이라야 가능한 섬뜩함이 그녀의 현실에선 곳곳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일기는 <아무일도 없었다. 오늘도 조용한 하루였다 >
생경스럽기까지 한 이 냉철함은 상처받은 영혼이어서 더 빨리 터득하는 것일까.
성숙이 전제되지 않는 소설이라 아쉽다
극단적인 이기주의 작가의 의도된 시선
삶에 대한 냉소주의가 돋보인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었을가.
죽는다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운이 더 나빴다면 그녀도 죽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그녀는 한다.
최근 마흔(현47세)이 넘어 쓴 공지영 글은 편안하다.
세상이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들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세상에 맞서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 나오는 소설들을
완벽하게 극복한 성숙한 모습이다.
그녀는 알고 있으리라.
글쓰는 일이 상처를 풀어내는 일임을
상처와 맞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추스리는 일임을.....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상처없는 영혼이 덜 아름다워보이는 건
상처가 주는 성숙의 결여 때문이 아닐까.
글쟁이답게, 글쟁이의 사명처럼
그녀는 작품으로 승화시켰고 흔적이야 남았겠지만 아픔을 증발시켰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집> <봉순이 언니>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의 미모만큼 깊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는것 같다.
그녀의 문학적 감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서관에는 신간이 없다.늘 한발 늦다
그래도 명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니 그것으로도 도서관책들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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