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답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건 내겐 아주 번거롭고 까다로운 명제여서,
그만 다른 기준에 매달려 버리게 되는가 봐.
예를 들자면 공정이라든가 정직이라든가 보편적이라든가 그런 거 말야.
만일 내가 네 마음속에 어떤 상처를 남겨 놓았다면,
그것은 너만의 상처가 아니고 나의 상처기도 해.
그러니까 그 일로 해서 나를 미워하진 말아줘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야.
난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불완전한 인간이야
그렇게 때문에 네가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라면 이해해 줄까.
네가 나를 미워한다면, 정말 나는 산산조각 나 버릴 거야.
나는 너처럼 자기의 껍질 속으로 쏙 들어가 무엇인가를 해나갈 수가 없어.
나는 사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겐 어쩐지 그렇게 보일 때가 있지. 그래서 때론 네가 몹시 부럽기도 했으며.
너를 필요 이상으로 끌어들이게 된 것도 어쩌면
그 부러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를 짐스럽게 생각하진 말아.
나는 누군가의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나에 대한 네 호의를느꼈으며, 그것을 기쁘게 생각해.
그래서 그 심정을 솔직하게 너에게 전하고 있을 뿐이야.
지금의 나는 다분히 그런 호의를 필요로하고 있어.
만일 내가 네게 한말 중에 어떤 말이든
부담스럽게 느껴진 게 있다면 사과할게. 용서해 줘
앞에서도 말햇듯이 나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불완전한 인간이야.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해, 만약에
너와 내가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상황에서 만나 서로가 호의를 가졌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고.
내가 정상이고 너도 정상이고(처음부터 정상이었겠지만,)
키즈키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고,
하지만 우리에게 이 '만약'은 너무나 큰 부담인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공정하고 정직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지금의 나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거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심정을 조금이나마 네게 전하고 싶은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상실의 시대-마음의 병을 앓는 나오코의 실종>부분
나오코가 실종된지 4개월 만에
나(오타나베)에게 보내온 장문의 편지중 일부내용이다.
자살한 친구 키즈키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 나!
둘은 친구를 잃은 연인을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어느날 첫밤을 보낸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는 외부와는 격리된 시설 (병원, 요양원 같은 )에 가 있었고
심약한 심신으로 나와의 관계가 정직했는가 공정이라든가
성실에 대한 명제를 안고 살아간다.
때묻지 않아서 그래서 더 아픈 여성이다.
나에게 내 '껍질'을 얘기할 만큼 그녀는 섬세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나오코!
아무렇지도 않은듯 살아가고 있지만
나오코 생각으로 고뇌하는 나!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 특이한 감정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소설이 주는 허구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면만 보면 추악하달수도 있는 모습이 없지 않지만
공존한 삶속에서도 그는 나오코 생각에선 가장 순순한 청년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순수한 감정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오코는 사물을 보는 견해가 지나치게 분석적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녀가 병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일을 단순화 시키고
세분화시키는 이렇게 된것은 이러 이러한 탓이다.
즉 수긍하는 삶의 자세다.
삐뚤어진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닌
삐둘어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삐둘어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각기 사람마다 걸음걸이에 버릇이 있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사고 방식,
사물에 대한 견해에도 버릇이 있고,
그것은 고치려 해도 갑자기 고쳐지는 것이 아니며
무리하게 고치려 들면 다른 데가 이상해진다는..
나오코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자신의 삐뚤어짐에 질 순응하지 못하여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자기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없어서,
또 그런 것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셈이라고 했다.
나오코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아프고 멀리있다.
어느날 혜성처럼 내 앞에 미도리가 나타난다.
그녀는 사랑스럽고 나오코와는 정반대의 여성이다.
현실의 나와 잘 어울리는 이성이지만,
아픈 나오코를 향한 와타나베의 사랑은
나오코가 죽음을 선택할때까지
미도리를 욕심내지도 않을 뿐더러 지켜준다.
미도리또한 지켜줄 것을 믿기에 나에게 더 사랑을 느끼는 여성이기도 하다.
그건 나오코의 사랑에 대한 인내심이기도 했고
그녀(나오코)가 풀어내지 못한 실마리를 함께 공유해가는 과정인것 같기도 하다.
청산되지 않은 문제를 나오코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나만의 의지 나만의 사랑 같은 것 같기도 하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애정의 가장 순순한 표현으로서 굳은 신념으로
사랑을 전제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나(와타나베)의 생각은
나오코에 대한 약속이며 자존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오코의 자살소식과 함께
미도리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는 시점 결국, 그동안의 항해가 미도리를 향한
사랑의 항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나오코의 죽음만이 어쩌면
미도리와의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오코가 죽지 않았다면 미도리와의 사랑은
나(와타나베)에게 불가능 했을지 모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아프고 ...그래서 나오코가 죽음을 선택해 준 것일까.
열여덟 열아홉의 청소년기에 싹튼 사랑의 감정!
애끓는 가슴앓이는 사랑도 성숙시키고 사랑은 사람을 성숙시킨다.
나의 충고는 매우 간단해
우선 첫째로 미도리에게 와타나베가 강하게 매료되었다면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것은 잘 될 수도 있고 그다지 잘 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나 연애란 원래 그런거야.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자연스럽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하나의 성실한 모습이니까.
나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미도리라는 여자는 아주 멋있는 여자인 것 같아.
와타나베가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고있다는 건 편지만 봐도 잘 알겠어.
그러면서 동시에 나오코에게도 마음이 끌린다는 것도 잘 알겠어.
그런 건 죄도 아무것도 아니지.
이 드넓은 세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날씨가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
인생이란 그런 거야.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와타나베도 그런 인생살이를 슬슬 배워도 좋을 때라고 생각해
와타나베는 때때로 인생을 지나치게 자기 방식으로만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아.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인생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겨 봐,
나처럼 무력하고 불완전한 여자도 때로는 산다는 게 근사하다고 생각하며 산다구.
정말이야. 그건! 그러니 와타나베도 더욱더 행복해져야 해.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해봐.
물론 나는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해피 엔딩을 맺을 수 없다는 걸 섭섭하게 생각해.
하지만 결국 무엇이 좋았다는 건 그 누가 알 수 있겠어?
그러니 와타나베는 누구도 염려하지 말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행복해지도록 하는 거야.
내가 경험해 봐서 하는 말이지만,
그런 기회란 인생에 두세 번밖에 없고, 놓치면 일생을 후회하게 되거든.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 갈등의 벼랑 끝에서>부분
나오코의 룸메이트이면서 그녀의 정신적인 지주 레이코!
두여인 때문에 고민하는 나(와타나베)에게 보내온 편지다.
나오코에 대한 감정과 미도리에 대한 감정이 확연히 다른것 같지만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분을 레이코가 풀어주는 편지글이다.
레이코는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게 없다"고 표현했다.
나보다 19살이나 연상인 레이코는 나에게도 나오코 못지 않은 멘토다.
그녀는 나오코의 분신같기도 하고 나오코가 떠나후엔
나오코의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묘한 대상이다.
실재로 우리 삶속에서 이런 대상을 가질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누구에게나 멘토는 필요하지만..
레이코가 있어서 이 소설은 답답하지도 폐쇄적이지도 추악하지도 않다.
이해를 전제하지 않은 단면은 추악하다.
그렇지만 레이코는 이 소설에서 독자를 이해의 숲으로 안내한다.
숲뿐 아니라 나무 한그루 한그루도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게끔 해준다.
개인 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
"와다나베가 만일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서 뭔가 아픔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면,
와타나베는 그 아픔을 앞으로 인생을 꾸려 가는 동안 계속 간직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만일 배울 게 있다면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면 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도리와 둘이서 행복해져야 해.
와타나베의 사랑은 미도리와는 관계가 없으니까.
더 이상 그녀을 상처 입히거나 하면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말아.
그러니 괴롭겠지만 좀 강해져야 해.
좀더 성장해서 어른이 돼야 하는 거야.
난 와타나베에게 그말을 전하려고 그곳을 나와 일부러 여기까지 온거야.
그 먼길을 그 관같은 전철을 타고서."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부분
이소설의 원제인 노르웨이 숲 (비틀즈 곡)은 37살이 된 주인공 내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노르웨이 숲을 듣게되는 것이 도입부다
18년전의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전개된다.
청소년기의 사랑이 아름다운건 순수때문일 것이다.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돌이켜볼 수는 있지만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장편은 내게 추억의 책장을 넘겨보는 것 같은 느낌을 읽는 내도록 주었다.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울수 있는지
어떤 미문보다도 설득력있게 그려낸 문장들 덕분에
하루키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기분은 감미롭기도 했고
어느순간에는 설레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감성 앞에서는 누구나 순수해지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장편 소설은 청소년기의 소년 소녀들에게는 성장소설로 적합할 듯 하다.
출판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쭈욱 베스트셀러의 반열에서 떠나지 않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일본소설이라고 한다.
곧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고 한다
언제 개봉될지 배역도 정해졌다고 한다.
책보다는 훨씬 다른 맛이 날 것 같은 영화가 기대된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이 밀레니엄 기념으로 실시한,
지난 천년동안의 가장 탁월한 문학인은 누구인가라는 독자 여론 조사에서,
<무라카이 하루키>는 당당히 1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 있는 문학가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셈인데
천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문학인의 반열에 오른셈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남성이 쓴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문장이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선지
허구보다는 실상이라는 느낌이 더 들었다.
하루키작품은 소설보다는 수필(에세이)이 좋다는 평은 들은 터라
다음 작품은 에세이를 접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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