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칠곡군 왜관에 있는 도자기 언니 집엘 지난 일요일 다녀 왔다.
스물여덟아가씨선생님 아람과, 서른을 한참 넘겨서 그놈이든 이놈이든 마음으로는 그립지만 너무 순수한, 아직껏 남정네와는 아무것도 못해본(!) 그림그리는 처자와 , 자기사업장이 있어 엄청 바쁨에도 처자에게 개인지도를 받는 아줌마와 (한달에 한 번 노는 날이 일요일이었던) 서예학원을 운영해서 평일에는 절대로 시간을 낼 수 없는 바람에 일요일 나들이를 가능하도록 만든 친구모람과 그리고 나까지. 어릴적 먹거리 가득 든 소풍 가방들고 집을 나서는 그 기분으로 나선 길이었다. 나이도 하는 일도 제각각이지만 그림이라는 모티브로 만나서 그런지 우린 만나면 금방 나이차 같은건 잊고 잘 논다. 그래서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겁다.
<하늘>이라는 명칭을 집 이름에 왜 붙였는지 물어보았어야 했는데..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이 좋아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산골 외딴 곳, 인적도 드문 곳에 70이 넘은 반(半)시인(겸손의 뜻으로 본인이 붙인 )과
도자기를 만드는 아내가 이곳에 산다.
하늘마마집 거실에서 본 뒷마당 정경이다.
뒷마당과 앞마당쪽 벽을 통유리로 넣어놔서 거실에 서면 앞 뒤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집안는 카톨릭 집안인데 신부였던 형님이 천수답 논이었던 이 터를 25년전에
사 두시고 그 터 제일 뒷켠에 성모상 하나만 세워둔채로 천국으로 가셨다고 한다.
도자기 언니 부부가 이 터에 집을 짓고 산지는 15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뒤란 오른쪽으로 개울물이 있다면 금상첨화일거라고 우리 일행중 누군가가 얘길 꺼냈다.
비가 오고나면 저 마당우측 골깊은 곳에선 물이 잘잘 흐느는데
2-3일정도 지나면 땅속으로 잦아들고 없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이곳에 물이 풍부해 계곡이 있었다면 대구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이렇게 호젓할 수 없었을 거라며 물 없는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이라며 시인은 만족해 하셨다.
시인은 아직도 詩강좌를 들으러 50분이나 걸리는 구미까지 매주 나오신다.
그러면서 당신은 또 다른 문학강좌에 강의도 나가신다.
배우는 것 , 가르치는 것에 소홀하지 않고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는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작년 3월에 시 등단을 하셨지만 여전히 당신은 반시인이라고 하시며
명함에도 이름석자 앞에 반시인이라는 표기를 넣어 놓으셨다.
언제쯤 시인이 될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내를 찾아온 사람들과 아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모습
욕심없이 소탈하고 사람좋아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초면임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가지 꼭 당부 할 것이 있다며 꺼내신 말씀은,
맘껏 놀다가더라도 갈때는 반드시 정리 정돈을 잘해주어야 한다는 것.
평상처럼 테이블이 ㄱ자로 있고
왼 쪽으로 키크고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가 두그루나 있어서 그늘이 깊고 넓었다.
아내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를 뒤란으로 안내하시고선 그대로 주저 앉으셨다.
물어볼 말도 할 얘기도 무에그리 많은지.
한참 서예에 재미를 붙이시고 성경을 판본체로 쓰기 시작하셨다는 시인은 서예를 한지 15년
된 대선배인 모람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말이 많아서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만나서 반갑고 반가워서 그냥 좋은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한참 담소를 나누었다.
성모상은 이 공간을 성지처럼 느껴지게끔 하는 묘한 기운을 품어주었다.
집터를 팔벌리면 한품에 안아줄듯, 그렇게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날 신작로에 가로수로 많이 쓰이던 미류나무 세그루가 성모상을 보좌하듯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서 있었다.
왼쪽 감나무에 약간 가려진 건물이 천장높은 공방건물이다.
둘이 살지만 낮동안 각자 자기 할 일때문에 아내는 공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만난다고, 그래서 더 반갑다고. 함께이지만 각자의 시간과 일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서로를 편안하게 놓아두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집은 지을때 앞마당을 넓게 쓰기위해 건물을 뒤로 당겨서 짓는 것이 대부분의 짓는 방법이지만, 실상은 집터 한 가운데에 집을 앉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글을 어디에서 읽는 기억이 났는데 (정확히 맞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우리네 한옥이 그렇다는..)
이 집 느티나무 그늘에 앉고보니 이 집이 딱 그런 형상이었다.
그런걸 알고서 집을 이렇게 앉혔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절대로 아니라고,
형님이 두고 가신 성모상을 위한 마당으로 이만큼 띄워서 지은 이유밖에 없다고 하셨다.
앞마당은 1,000여평이나 되는 공간에 매실나무를 비롯한 온 갖 유실수들이 많았지만,
그 전경좋은 앞마당보다 요 뒤란 풍경이 훨씬 정감가는 공간이었다.
뒤란은 마음의 여유요. 삶의 여유처럼 편안하고 아늑했다.고향집 마당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이 집에선 요 뒷마당이 가장 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방에도 이렇게 담소를 나누며 차 마실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ㄷ자로 다락을 넣은 윗 공간이 훨씬더 정이 가는 공간이었다.
다락방 전경이다.
ㄷ자 공간마다 차를 마실수 있는 좌탁이 돌아가면서 마련되어 있다.
옛날 한옥의 정지(부엌)문이 좌탁으로 놓여져 있었다.
제법 두껍고 튼실하게 만들어진 품새로 봐서
어느 반가의 정지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 드는 문짝이었다.
가운데 불룩한 손잡이는 그대로 붙어 있는것이 훨씬 운치가 있어 보였다.
원래 다락을 계획하고 지은 건물이 아니어서 창문은 1층에서 연결되어 다락방까지 올라오기 때문에 다락방에서 뒤란을 볼려면 눕거나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야 볼 수 있다.
시인의 습작들이 도배지를 대신해서 먹향기까지 우러나서 참 좋았다.
이 공간엔 이 습작품들보다 더 잘어울리는 도배지가 또 있을까.
좋은 사람과 차를 마시고, 매미소리 들으며 낮잠이라도 늘어지게 자고 싶은 공간,
하늘을 보고 싶으면 창문때문에 누워야하는 곳,
눕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다.
촛대가 많고 찻잔도 많았지만 요 십자가 넣은 찻잔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얼마전부터 서울 명동성당에도 납품하게 되었다며 도자기 언니는 신나 있었다.
처음만나는 사람이라도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처음 가보는 장소라도 이런 곳에 살아봤으면 생각이 드는 장소도 있다.
하늘마마집은 초행길이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또 그에 맞게 잘 어울리는
뒤란같이 여유로운 부부의 모습까지 언제든 찾아 가고 싶은곳으로 남을 것 같다.
살고 싶은곳인 동경의 대상으로도 삼고 싶을 만큼 좋았다.
좋다고 했더니, 도자기 언니가 그랬다.
이곳이 좋은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여서 그럴 거라고,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일 거라며,
"누구와"가 중요하다고.
만남은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야 더욱 울림이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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