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설렘 - 우리 시대 대표 소설가들의 리얼 러브스토리

구름뜰 2009. 8. 14. 11:09

 

 

"이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다."

 이 시대 최고 작가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를 설레게 한 첫사랑의 추억

 

"내 생애 가장 황홀했던 사랑의 순간"

폭풍처럼 몰아친 첫사랑의 기억.

소설가 14인의 생애 첫 고백..

 

한때 당신은 내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데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 였을까요?

생의 굽이굽이에서 예기치 않게 당신을 만난듯

우리가 또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마주칠지 모르겠습니다.

 

 

 타이틀이 너무 예뻐서 풋풋한 사과향 같은 것이 느껴지는 책,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 안도현님을 비롯한 시인 24명의 사랑이야기가

<떨림> 1호로 2007년에 나왔다. 그리고  이 책 <설렘>은 떨림의 두번째 이랴기라는 것은

이책을 받고 머리말을 읽으면서 알았다.

<설렘> 은 김훈, 양귀자, 박범신, 서하진, 은미희등 소설가 14인의 사랑이야기가 실려있다.

 

 책을 주문하면서 작가(소설가)들이 우리 나이즈음에 아니 그보다 더 많은분도 있지만

청춘도 아닌 지금에 와서 풀어내는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 얼마나 진솔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의 연애 감정은 어떠했을 지.

첫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 연애 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 충만한 맘으로 '떨림'을 안고 '떨림'의 책장을 넘겼다.

  

 

원고지를 꺼내 놓고, 이번 원고 청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것을 여러 차례 후회했습니다.

공개된 지면에 쓰는 '연애편지'라니요.

말도 되지 않는 시도라는 걸 왜 처음엔 깊이 깨닫지 못했는지.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애는 격렬하면서도 눈물겨운 비의로서 객관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개하는 건 더욱 더 그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이야 어떻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고, 당신도 내 생각에 기꺼이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미안 합니다.'

스탕달은 말했습니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나는 살았고, 오로지 썼고, 언제나 사랑의 열망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럽고 황홀한 감옥 속에 갇혀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후회보다. 돌아보면

나는 축복의 시간 속을 매순간 가파르게 관통해 왔습니다.

이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정글의 야만적 법칙에 따른 치열한 경쟁심을 앞세워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오로지 쓰고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은혜가 아닐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시간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시간이 생생했고,

모든 공간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공간이 고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은 더욱 그랬지요.

당신과 만날 때마다 나는 언제나 감을 수 있을 때까지

감아 놓은 가파른 현과 같았습니다.

당신이 손끝만 내밀어도,

아니 당신이 눈빛만 보내도 내 온몸이 떨면서 음악 소리를 냈습니다.

나의 현들은 자주 비병을 질렀고 자주 불협화음을 냈고

또 자주 황홀한 고통으로 찢어졌습니다.

나는 과연 당신을 사랑한 것일까요, 아니면 나를 더 사랑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흘러갑니다.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불변의 금강석처럼 남아 있는 것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시시각각 내 안에서 무엇인가 타고 있는 걸 봅니다. 허수아비 같은,

실재하지 않는 헛것들이 아직도 불타는 걸 지켜보고 견뎌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그것을 열망이라고 부릅니다. 

그때 그 순간이 과연 무엇의 시작이었는지 모호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무엇의 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건 바라지 않겠습니다.

늘 환하게 사십시오.

봄꽃은 소월의 시에서처럼 '저만치'에서 황홀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봄꽃'과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나' 사이의 거리 따위는 그만 잊겠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모습이 수십 년 전의 당신인 것 같고,

엊그제 꿈속에서 만난 당신인 것도 같고,

또는 전생의 당신인 것도 같습니다.

부드러운 안개가 흘러가지만 '천 년 전부터'거기 있었던 벚꽃 환한 그늘에

은신한 당신이 비로소 따뜻하고 넉넉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 봄날이 참 환합니다.

 박범신 - 이 봄날이 참 환합니다-  부분

 

 

14분의 글중에 박범신 선생님의 글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고 진솔하게 와 닿았다.

 선생이 내 연인도 아닌데 편지글로 시작한 이 글이 

그분이  '당신'이라고 지칭한 그 당신이 꼭 나인 것처럼 .,,,.

그래, 이 나이쯤에 풀어낼 수 있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선생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드러내는 것은 차마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제된 마음이 좋았다.

 

모든 시간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시간이 생생했고

모든 공간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공간이 고정돼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시각각 무엇인가 타고 있는 걸 봅니다.

허수아비 같은 실재하지 않은 헛것들이

아직도 불타는 걸 지켜보고 견뎌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것을 열망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랑이 없었다면 글을 쓸수 있었을까.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  생생함으로  그리움으로

어느 때는 열망으로 몸살을 앓았더라도 그 아픔을 견디며

다시 그렇게 살아 오고 견디어 낼 수 있었던건, 어딘가.. 

 저 하늘 같은 하늘아래서 그도 나처럼 살아있어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도 그를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

 살아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존재의 소중함 

시공을 향한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 

이런 것들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감히 어떻게 라며, "미안합니다" 라는 편지글로 고백한 마음이

요란스럽지 않아 더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이면, 이런 사랑이면, 아마도 살아가는 내도록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봄꽃'과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보고 서있는 '나' 사이의 거리 따위는 그만 잊겠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모습이 수십 년 전의 당신인 것 같고,

엊그제 꿈속에서 만난 당신인 것도 같고,

또는 전생의 당신인 것도 같습니다. 

 

환한 봄날을 꿈꾸는 선생님처럼

그녀도 담담하게 환한 봄날을 어딘가에서 찬양하고 있을 것 같다!

 

 

 

사랑에 빠지면 가요가 모두 자신의 마음이 된다는 법칙은 재이도 빗겨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재이에 대한 마음을 분명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재이는 나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했다.

재이가 몇 번 내 감정을 물어볼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말로 하는 약속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어."

사랑이란 확인하려고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진짜 사랑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믿어지는 것이고 의심 없이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말하는 순간 진실은 깨질 것만 같았다.

그것이 문학을 통해 얻은 섣부른 사랑론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내가 재이만큼 사랑에 눈 멀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의 저울은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반드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무게의 불균형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재이는 매일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쓸쓸했던 모양이었다.

그날도 제이는 조금 늦게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겨울 초입이어서 어스름이 일찍 내렸다

전봇대에 걸어둔 30촉 백열등이 희미하게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집에 막 들어가려는는데 재이가 나를 붙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입술에 살짝 와 닿는 따뜻함.

그리고 후다닥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사랑해."

벌써 저만치 뛰어간 재이가 하늘을 날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크게 소리쳤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나의 첫 키스였다.

 

 

그렇다.

사랑에 빠지면 시와 노래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모든 노래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시인은 나를 위해 시를 지은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시집을 하루 저녁에 몇 권을 섭렵하고서도

 대상에 대한 가슴앓이는 해소되지 않은다.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만이  그것을 해결해 줄 뿐.

 

 재이라는 스무살 남자의 풋풋한 사랑이 너무 예뻐서 나는 이글을 읽으면서

 내 스무살의 청춘이 갑자기 가엾어졌다.

순수한 재이의 사랑과 그 사랑을 함께 소통했던  작가의 모습까지. 부러웠다!

맘껏 사랑을 표현하고 주고 받을 줄 아는 사랑.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랑

 만져볼 수 있는 사랑

말 할 수 있는 사랑.

 

내 젊은 날의 사랑은 절제만이 미덕이었고, 가슴앓이 만이 유일한 사랑의 양식이었다.

그렇게 스무살 그 보석같은 시간들을 미덕과 양식에 저당잡히고 산 셈이다.

그 절제와 가슴앓이를 누군가가 드러내놓고 강요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그래야  되는 줄 알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맘껏 사랑한다는 것'은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랑에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철옹벽 같은 것이었다!

그래야 한다는 무언의 암시같은 것들이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었고,

무딘 감성이 아니라서  그 민감한 촉수는

사랑이나 연애감정에 보다 먼저 반응했으며

그래서 청춘은 아름답지도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섣부른 어른이 된 젊음은 그렇게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슬프게.. 미숙하게.. 그리고 어리석게..

 

 

님! 그대 가시는 그 길에

내 자신은 낙엽이 되게 노력합니다.

님! 그대 있는 그곳에

내 자신은 천막이 되게 노력합니다.

님! 그대 아무리 빈 잔이라도

내 자신은 그 잔을 가득 채우도록 노력합니다.

 

사랑은 모든 이를 시인으로 만든다더니 재이는 그 다음날 정말 시인이 되어 나타났다.

태어나서 처음 썼다는 시를 의기양양하게 두 편이나 내 앞에 내밀었다.

재이의 글에는 사랑에 빠진 스무살 남자의 진심어린 흥분과 열기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나를 생각하느라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수많은 파지를 내던지며

몇번이나 고쳐 썼을 재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표현이었지만

나를 향한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은 나를 감동시키고 말았다.

 

뾰요한 당신의 눈빛은

한 폭의 그림인 것 같습니다.

낙엽 위 그대의 눈길은

한 권의 시집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영혼들

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시는 훨씬 더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 뾰요한 눈이란 게 대체 어떤 눈일까

너무 궁금해졌다. 처음 보는 낱말이었다.

한폭의 그림과 한 권의 시집에 비유한 걸 보면 나쁜 뜻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라도 마음 다칠까봐 무슨 뜻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의 예쁜 눈을 묘사한 거야. 느낌이 팍 오지 않아?"

나를 위해 시를 쓴 재이, 그만큼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소중했다.

나는 꾀 오랫동안 재이의 시를 수첩에 넣고 다녔다.

 

"네 심장만 뛰면 언제까지나 네 옆에 있을 수 있어"라고 내게 속삭이던 재이의 마음은

그 순간 진실했고 나는 진심으로 재이의 사랑을 믿었다.

세상엔 재이와 나의 사랑 이외에 가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세상의 중심은 재이와 나 , 우리 사랑이었다.

스무 살의 사랑은 멈출 줄 몰랐고 순화될 줄 몰랐으며 감춰지지 않았다.

재이는 편지로 내게 청혼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중에 비록 혼자 남겨진다 해도 당신에 대한 감정은 변치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까닭입니다.

 당신을 가슴에 눈물이 고일 만큼 사랑합니다. 당신은 내 자신의 분신입니다.'

결과적으로 나를 적응시키진 못했지만 재이가 늘 주장하던

사랑의 슬로건은 '열심히 사랑하자. 죽도록 사랑하자. 행복하게 사랑하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었던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재이의 사랑에 행복하면서도 차츰 숨이 찼다.

재이는 사랑의 행군을 하고 있었다.

나는 따라가다 지쳤고 재이는 자신의 행보를 따라주는 못하는 내게 절망했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연애는 유치하다.

연애는 다른 사람눈에 한없이 어리고 미숙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미완이 주는 사랑의 설렘은

연애를 단순한 유치에서 끝내지 않고 찬란하게 만든다.

연애의 빛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건조한 흑백의 세상이 실체를 드러내겠지만

연애의 절정은 그래서 더욱 눈이 부시다.

김규나 -뾰요한 눈빛,  뾰요한 사랑 - 부분

 

 

행군! 그렇다 사랑은 행군이다.

재이가 장거리 선수였다면 그녀는 단거리 선수였던 것일까.

사랑도 지나치면 지친다.

단거리 선수는 장거리 선수를 만나면 지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장거리 선수는 단거리의 그녀에게 빨리 권태를 느끼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도 지칠것이다. 그녀처럼 시차를 두고.. 

그렇다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까.

그것이 알고 만나는 부분은 아니기에 그럴수도 없다.

만났다면 만나고서도 늦게서야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고 보면 열정이나 열망은 성격인지도 모른다.

그 '성격' 이란 것이 그 많은 사유중에 1위인 <성격차이>를 만들고.. 

 

여자가 더 많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의  남자는 

빨리 권태를 느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보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와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또 희생적인 여성은 남자가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해

결국에는 있는 것 없는 것 다주고 버림받는다는 얘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남녀간의 다른 성향차이

그러니까 보편적인 심리를 표현한 것이겠지만, 객관적으로 공감 가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이렇다라고 분류하고 규정 짖는것은 지혜롭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랑외에는 감히 무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좋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선험적인 경험서들을 접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위로와 위안, 그리고 미래까지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기게도 되고

 미래를 향한 꿈도 키울 수도 있으니까.

멋지게 잘 살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자면

책을 많이 읽는 것도 그 한 방법이다.

 

남들처럼 살 수 있다면, 이라고 자신의 삶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가 과연 바라는 남들처럼  살게되었을 때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시야가 왜곡되었거나  편견이 있었다면 

남들처럼 살게되었더라도 그는 행복하지 않은 자신을 발결할 뿐일게다.

너는 왜 나가 아니고 너인가 처럼,

러기에  우리는 자신만의 색으로 자기만이 그릴 수 있는 사랑을 그려야 할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 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었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여름에 당신의 소매 없는 블라우스 아래도 당신의 흰 팔이 드러났고

푸른 정맥 한 줄기가 살갗 위를 흐르고 있엇다.

당신의 정맥에서는 새벽안개의 냄새가 날 듯했고 당신 몸속의 먼곳을 향했고

그 정맥의 저쪽은 깊어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당신과 마주 앉아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고,

당신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당신의 시선은 내 얼굴을 뚫고 들어와 내 몸속으로 스미는 듯 했고,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이끌려,

건너와서 내게 닿는 당신의 시선에 경악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부름으로 당신에게 건너가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당신의 시선이 내게 와 닿았을 때,

나는 바다와 내륙 하천 사이의 거리와,

시간과 공간이 일시에 소멸하는 환각을 느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바다의 기별 곡릉천에서 - 부분

 

 

닿을 수 없는것

품을 수 없는 것

만져지지 않는 것

불러지지 않는 것

건널 수 없는 것

다가 오지 않는 것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래서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움은, 그래서 사랑의 단짝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면 그리운 감정이 생기고 그 것은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앉는다.

가슴에서 머리까지 가득차오르는 그리움은

 섬처럼,

갈 수 없어서 사랑이고 갈 수 없어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날들이 있었어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언제나 내 말에 귀 기울여주었고,

단 한번도 내 말에 반박을 한 적이 없었지요. 만나면 솜털처럼 포근한 사람이었어요.

그도 그랬어요.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사랑의 불찰은 바로 그런 순간에 오는 것이지요. 그의 웃음이 심심해지고,

그의 다정함이 구속으로만 여겨지고, 그의 행복이 나와는 무관한 듯 여겨지고,

저는 점점 건방져갔어요.

이런 사람 너무 흔해서 시시하다고, 이런 사랑, 너무 탈이 없어서 지루하다고......,

양귀자 - 참 대책없는 어던 사랑 - 부분

 

 

사람의 감정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점점 건방져 가는 사랑

  언제까지나 나를 바라 봐 줄 것 같고,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것만 같은 사람.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 줄 것 같은 그런 건방진 감정을 건방진 건 줄도 모르다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떠난 다음이고,  그렇게 건방졌던 값을 톡톡히 치르는

사랑의 아픔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하는...  시차를 두고 오는 사랑, ..

 성숙하지 못해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랑도 있다. 

 

  

 

사랑을 믿습니까? 영원한 사랑을 믿습니까?

나는 믿습니다. 시간 속에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라면 잘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 처음 그때와 다름없이 빛나는 사랑이라면, 나는 감히 믿습니다.

기억들. 10대의 마지막과 20대의 처음을 나누어 가졌던,

이제 와 다시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연애의 시간들,

핸드폰도 삐삐도 인터넷도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겁도 없이 설치고 다녔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무엇보다,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지긋지긋한 짝사랑과는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른, 진짜 사랑 말입니다.

살아 있는 사랑, 만질 수 잇는 사랑, 반응하는 사랑, 냄새 맡을 수 잇는 사랑. 전화 통화할 수 있는 사랑. 먹고 마시고 웃고 화내는 사랑. 뽀뽀할 수 있는 사랑. 그리고 안 좋은 점이라면,

이걸 안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을찌 송구스럽지만 하고 싶다는 그것이었습니다.

진짜 사랑이니 진짜 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몹시 괴롭다는 것.

아아, 도대체가 삶이란.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가 내 속을 들여다볼까 걱정스러웠습니다.

열아홉 살. 그간 밥 먹고 물 마신 횟수보다 많았던건 섹스에 대한 공상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와 하고 싶다는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헷갈렸습니다. 나는 사랑하는가? 과연 그녀를 사랑하는가?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가?

백해무익, 답이 없는 혼란이었습니다. 세상의 진짜 사랑이란 이렇던가. 이런 고충이 있었던가.

 

함께 있다보면 자꾸 이상한 곳(?)에 눈이 갔습니다.

자꾸 만지고 싶었습니다. 자꾸 뽀뽀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입이 가고 몸이 갔습니다. 

특히 둘만의 술집에서 그러했는데, 과하게 뽀뽀하고 허리를 안고 때로

티셔츠 속에 손을 넣었다가 뺨을 맞기 일쑤였습니다.

괴로웠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괴로웠습니다. 정신뿐 아니었습니다.

육체도 괴로웠습니다. 아팠습니다 엄살떠는 거 아닙니다.

온종일 바지 안이 거북하게 팽창해 있다보면,

그걸 엉거주춤 감추고 온종일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고 공원을 걷고 하는 것도 사뭇 불편한 데다

남들이 알아볼까 고역이지만, 내내 그 상태로 저녁나절이 되면, 배가 아팠습니다.

장염 걸린 것처럼 불알을 잘못 걷어 차인 것처럼 정말로 아랫배가 살살 땅기고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 괴로우니

둘 다 집어치우라고 설파한 이 누굽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랫배 아파지는 고통을, 그 양반도 꿰뚫어 알고 있었을 겁니다.

종일 흐리고 눈 비오던 어느 겨울날, 마침내 나는 고백했습니다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밤하늘에 달이 하필 한 개밖에 없는 것처럼 이제는 일상이 되고 만 내 간절함을.

 "그랬어?"

그녀는,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대꾸했습니다.

 "그런 거 같더라."

" ...저어 , 너는?"

 "나? 나는 별로."

 "어, 그래?"

 " 응. 나는 싫어."

단호했습니다. '응' 좋아 . 나도 기다렸어." 그런 반응을 기대했던 것 까지는 아니지만,

참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낙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졸라댔습니다. 그리고는 거절당했습니다.

다시 애걸복걸했습니다. 역시 냉랭하게 거절당했습니다.

처음엔 다소곳이 거절하던 그녀가, 결국엔 한심하다는 듯 짜증을 부렸습니다.

처음에는 수줍게 칭얼거리던 내가, 받을 돈 못받은 주인집 여편네처럼 성화를 부렸습니다. 

 ----

그래요. 그녀는 내 첫사랑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랑. 반응하는 사랑. 만질 수 있는 사랑.

냄새맡을 수 있는 사랑. 진짜 사랑. 하지만 그녀가 왜 갑자기 대천을 생각했던 것인지.

끝내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고작 스무 살이었고, 하지만 5개월 전보다는 그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세월은 가고 사람도 가고. 하지만 사랑은 남는 것.

흘러간 시간 속에 생생히 남아 숨 쉬는 것. 하여,

내 젊은 기억 속에 아직도 함께 하고 있는 그녀. 뭐하고 있을까요?

여자 나이 마흔 살. 지금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때의 나를 혹시 기억하고 있을까요?

 

몸속 깊이 숨어 있던 종양의 기운을 문득 느끼듯.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대천의 가을밤이  그 시절 그녀와의 마지막이었음을.

사랑을, 영원한 사랑을 믿습니까?

 한차현 - 내게도 그런..... - 부분

 

....ㅎㅎ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 같은 이 글이

 <설렘> 두번째 이야기중에  가장 재밌는 부분이었다.

한차현 작가의 글은 처음 읽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을 만큼

거침없는 글솜씨 반갑게 재밌게 몇 번을 읽었다.

 

내가 스무살 적에 이 글을 읽었다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ㅎㅎ

사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이런 생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어른들이 남자는 늑대 라는 정도의 속담같은 격언도

 이런 현상속에 내재된 동물적인 욕구를 얘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결혼생활을 한 참 하고 나서야 내 경우에는 깨달았으니 .. 내가 늦은 건지

이런 문학작품(다양한 장르)을 일찍 접해 보지 못한 탓으로 돌려야 할지.. ㅎㅎ

 

내가 사춘기때 처음 접한 소설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런 여성이 결혼과 함께 망가져 가는 삶을 살게되는

여성의 삶이란 것이 백프로 남자에게 달려있음을 암시해주는 책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런 책을 읽는다면 짜증날 일이지만,,  그 시절 읽을 때는 별 개념 없이 읽었다.

 

 

 

당신을ㅡ 보았습니다.

세상에, 내가 안으로 내뱉은 첫마디였습니다.

그 순간 무서웠습니다. 맹목적으로 당신에게 쏠리는 감정이 무서웠고,

내가 상처받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철없던 감정과는 또 다른 파문이었고 몸살이었지요.

전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쳐서는 꽁꽁 숨고 싶었습니다.

왠지 내가 크게 아플 것 같아, 내가 바보가 될까봐 나는 나를 숨기고,

내 마음을 숨기고, 그리고 도망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예의 그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은미희 - 당신은 바람-부분

 

 

그래서.. 그리하여 결국 나는 쓰고야 말았다. 내가 가지 않았던 그 길들에 대해서...

시인은 말했다. 가지 않은 길은 아름답다고, 언젠가를 위해 그 길을 남겨두었노라고,

내가 가지 않았던 그 길들은 아름다웠을까?

그 길을 갔다면 나는 지금가 달라졋을까?

알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 길들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 본래 후회는 안하는 편이라서...

일어나지 않는 일도 일어난 일에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는 주의이므로...

노랫말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사람이라서...

 서하진 - 그대의 흰손- 부분

 

그애와 나랑은 비밀이 있었네

그애와 나랑은 남몰래 만났네

그애와 나랑은 서로가 좋았네

그애와 나랑은 사랑을 했다네

하지만 지금은 그애는 없다네

 

그애를 만나면 한없이 즐거웠네

그애가 웃으면 덩달아 웃었네

그애가 슬프면 둘이서 울었네

그애와 나랑은 사랑을 했다네

하지만 지금은 그애는 없다네

그애의 이름은 말할 수 없다네

 

이 책을 읽는 내도록 '그애와 나랑은' 이라는 노래가 후렵구처럼 내 귓전을 맴 돌았다.

청춘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그래서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 비밀이 되어 버린 사랑..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엔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 

이 詩는 내 젊은 날의 절제와 가슴앓이였던 그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불러 준 사랑노래 였다.

 

 

 

<떨림> 첫번째 이야기는 시인들이 쓴 글이라고 해서 더 궁금하다 

이책 두번째 이야기는 1판 1쇄가 7월 30일이고 1판 1쇄 발행이 8월 10일인데

나는 이 책을 7일에 주문했는데 10일에 받았다.

날짜로 보면 발행일에 받은 셈이다.

ㅎㅎ 그야말로 신간이다

 .

독자 리뷰를 읽을 수 있는 책들은 그나마 실패할 확율이 덜 하지만 

신간인 경우는 광고기사만 보고 구입하면 실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번 설렘 신간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 반가움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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