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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그린 열아홉 눈보라 같은 사랑

구름뜰 2009. 8. 22. 08:11

대중문화

제9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⑨ [중앙일보]

쉰 살에 그린 열아홉 눈보라 같은 사랑
소설-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열아홉이 어떤 나이였더라. 은희경(50·사진)씨는 소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문학동네’ 2009년 여름)에서 열아홉의 낭만적 사랑과 불안, 죄의식을 그린다.

바닷가 도시에서 서울의 학원으로 대입 막바지 정리 강의를 들으러 올라온 열아홉 안나. 서양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속의 사내아이와 닮은 요한은 그녀의 가슴을 콩닥이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안나의 단짝이자 안나보다 예쁘고 무용을 잘 하는 루시아의 남자친구가 됐다. “하느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잘못 포장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셋이서 함께 보내기로 한 십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이브. 명동의 약속 장소에 루시아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안나와 요한은 눈 오는 거리를 둘이서 걷는다. “이런 순간이라면 마치 탬버린 소리가 울려퍼지듯 목성과 화성과 명왕성에도 눈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있을 것이라고.” 1976년의 겨울 이야기다.

“중견이 19세의 감성을 그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포함되는 작업이었어요. 요한과 걸으려는 순간, 내가 써놓고도 가슴이 벅찼어요. 재능이 없는 건 아니구나 싶어 기뻤죠.”

은씨의 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초기 은희경으로 되돌아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초기작이 낭만적 사랑에 대한 조롱과 냉소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은 조금 더 무겁고도 아름다워졌다”는 평이었다.

“소설에 괜찮은 남자, 예쁜 여자를 잘 안 썼어요. 사실성 있는 것만 하겠다면서…. 그것 자체가 경직되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판타지, 달콤한 것도 담게 됐나봐요.”

소설에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그림 하나, 시 한 수가 있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와 단편 제목을 따온 사이토 마리코의 시 ‘눈보라’. 두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던져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소설이다.

이경희 기자

◆은희경=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타인에게 말걸기』, 장편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등. 동인문학상·이산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