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진규 ‘씨를 뿌리다’ 외 33편
정진규(70·사진) 시인은 지난해 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경기도 안성의 생가로 내려갔다. 선친의 명에 따라 조상의 묘를 한곳으로 모시고 묘지기 노릇을 하러 간 게다. 시인은 “조상음덕을 받았다”고 했다. 아침마다 묘를 한바퀴 도니 운동이 절로 돼 건강이 좋아졌다. 시는 더 말할 것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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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고 흙을 만져보니 자연의 ‘당길심’이 대단했다.
“심어놓고 한번 들여다 본 것과 두번 들여다 본 게 달라요. 이파리나 열매로 섬세하고 조밀하게 표현해요. 저를 위해, 지가 잘 살려고 그런다고. 그 전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으로만 알았지….”
‘씨를 뿌리다’는 그런 자연의 당길심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시다. 폭신한 흙은 사랑하는 여인의 살을 만지는 듯한 관능으로 다가와 시인의 노동과 땀방울을 재촉한다. 나비가 꽃을 탐하는 장면을 보듯, 화끈거리진 않아도 발그레해지는 시다.
권혁웅 예심위원은 “귀향 후 더욱 생생하고 깊어진 시편들에서 정진규식 어법의 완성과 변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정진규=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말씀의 춤을 위하여』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등. 월탄문학상·공초문학상·불교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