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말(馬)과 말(言) | ||||||||||
그림책 ‘말과 말’의 줄거리이다. 하는 짓이 사리에 맞지 않고 줏대가 없는 사람을 낮잡아 ‘쓸개 빠진 놈’이라 하는데 책의 내용대로 말에게는 쓸개가 없다. 말에게 쓸개가 없는 이유의 과학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사람들이 오죽 말을 함부로 옮기고 다녔으면 세태를 비꼬는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나왔을까. 그림책에서의 말은 사람으로 치자면 자아 존중감이 낮은 유형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내면 탐색보다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 관심이란 흔히 호기심과 질투에서 나온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스스로 내세울 게 없으니 남의 흠집을 들춰내고 소문을 만들어 퍼나름으로써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려 하는 것이다. 유태교의 가르침에서 혀는 화살에 비유되어 왔다. “혀를 칼이 아닌 화살에 비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어느 랍비(율법 교사)에게 지혜로운 이는 답했다. “누가 제 친구를 죽이려고 칼을 뽑았다가도 그 친구가 용서를 구하면 화가 누그러져 도로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쏜 화살은 돌이킬 수 없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큰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남기기도 한다. 말이 남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무기로 사용될 때가 그러하다. 특히 사람들은 감정이 격해지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위기를 모면하는 ‘생존형’ 대화를 함으로써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만든다. 가족치료 이론의 선구자인 버지니아 사티어(1916~1988)는 사람들이 긴장할 때 보여주는 의사소통 및 대처 유형을 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으로 분류했다. 이 네 가지는 역기능적인 유형으로 심리적으로 유약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대화 기법이다. 이를 수치로 따져 보면 무조건 비굴하게 자기 잘못이라며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회유형이 50%로 가장 많고 상대방을 공격하며 남 탓으로 돌리는 비난형이 30%, 상대방을 가르치려 드는 초이성형이 15%, 현재 화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해서 상대방 속을 긁어놓는 산만형이 0.5%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4.5%는? 내적 감정과 일치하는 진솔한 대화를 하는 일치형이다. 그런데 일치형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 겨우 4.5%라는 사실이 놀랍다. 새벽에 귀가한 대학생 딸에게 아버지가 화를 내며 야단을 친다. 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산만형의 딸은 무조건 싹싹 빌거나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늦게 들어오는 이유가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쏘아댄다. 반면 일치형의 딸은 아버지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늦어진다고 연락 드려야 했는데 시험 준비에 정신이 없어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저 기다리시느라 잠도 못 주무셨죠?” 이런 딸이 있다면 야단은커녕 용돈을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지 않을까? 일치형의 대화를 하는 사람은 높은 자기 가치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안다. 자기와 타인, 상황 모두를 존중하므로 갈등 또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화술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문학으로 자녀와 소통하기’라는 주제로 강의할 때 필자는 청강자들에게 다섯 가지 가운데 어떤 유형에 속하느냐고 물어 보곤 한다. 대부분 일치형을 제외한 네 가지 혼합형이라고 대답했다. “그때그때 달라요” 식이다. 혹자는 한국인들은 대화 기술에 관한 한 ‘무면허 운전사’ 같아서 상대를 치고 긁는 사고를 되풀이한다고 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 가을 나를 먼저 돌아본다. 그동안 쓸개 빠진 말은 아니었던가 하고. 문득 대원사에서 봤던 글귀가 생각난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 마음의 흐름을 살피고 여럿이 있을 때는 자기 입의 말을 살펴라.’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09년 09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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