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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부모님과 함께하는 문화 나들이

구름뜰 2009. 9. 24. 13:27

[매일춘추]부모님과 함께하는 문화 나들이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관람, 전시회 등 좋은 문화 상품이 있으면 나는 기꺼이 찾아가는 편이다. 학창 시절엔 단체 관람 외에는 공연물을 본다는 게 쉽지 않았고, 그 굴뚝 같았던 갈망을 지금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공연의 감동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라는 공익 광고의 카피처럼 문화 체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비타민이다.
 

2년 전 추석 즈음이었다. 엄마 생일을 맞아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어떤 추억 만들기를 할까 하다가 여동생과 넷이서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평생을 자식 위해 살았고 모은 재산을 나누어 주었건만 어머니가 납치되자 몸값이나 주고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인 자식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나눠준 재산을 다시 회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납치범들과 납치극을 주도, 재산을 자식들에게서 도로 빼앗는 줄거리였다. 자식 제대로 가르치는 게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먼저라는 걸 알려주는 영화였다. 우리 시대 부모와 자식들의 자화상 같아서 씁쓸함이 남는 영화였다.

 

줄거리도 좋았지만 부모님께서는 스크린 크기만한 얼굴과 수백 수천마리의 벌떼들이 달려드는 일,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등 CG인 줄은 꿈에도 모르시고 영화 도중에 연방 탄성을 자아냈다. 놀라운 장면에선 못 보겠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귀여운 모습도 보였다. 영화 끝나고도 극중 인물걱정을 할 만큼 스크린에 강한 자극을 받은 듯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어땠느냐고 막 물어 보려던 찰나, "칠십 평생 극장 구경 처음 했네"라며 아버지께서 독백처럼 나직이 말씀하셨다. 좋았다고 영화 감상에 대한 감동을 솔직히 말씀하신 거였는데 나는 놀랐다. 그렇지 않게 사는 부모님 세대도 있지만 여유 없이 살아오신 탓이고, 이제는 여유가 있어도 몰라서 즐기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던 것이다.

 

내 부모님이 문화의 불모지에서 살고 있는 줄을 나는 그날에야 알았다, 동시대를 살고 있고 같은 문화권이라 생각했지, 세대 간의 간극이 이렇게 클 줄이야. 취향 문제여서 즐기지 않는 줄 알았지, 기회가 없어서인 줄은 몰랐다.

 

그 영화를 계기로 좋은 공연이 있다고 연락을 드리면 부모님은 기꺼이 문화 나들이를 오신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제는 맛을 아신 부모님과의 공연 관람의 감동은 그 어떤 추억 만들기보다 흐뭇함으로 남는다. 이번 주에는(24~26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공연이 있다. 부모님과의 나들이가 기대되는 주말이다.

이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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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09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