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어버이날 이야기..

구름뜰 2010. 5. 9. 11:09

   

 

아빠,

이렇게 편지 쓰는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맨날 잔소리만 하시고, 아빠가 원래 그런 마음은 아닌것 알지만

나도 아는걸 표현 하지 못하는 걸 알잖아요.

벌써 4학년. 솔직히 하루하루가 걱정이 태산이예요.

그렇다고 걱정하는 만큼 공부를 미친듯이 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공부만 하고 싶지만 내가 지쳐요...

아빠가 공무원이 지내보고 제일 괜찮은 것 같아 나한데 추천을 하는 맘은 잘 알지만

진짜 싫은건 아닌데 진짜 하고 싶지도 않아요.

했다가 나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때는 막상 그 생활에 익숙해져 버려서

만약에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직장을 쉽게 옳기지 못할 것 같단 말이지요.

그냥 공무원을 해서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내가 정말 공무원이 된다면 평생 마음속에 뭔가 한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평생 후회로 남을까봐 걱정이고.

사실 나도 겁이 많지만 세계 여기저기에서 젊을 때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일단 해보고 아니다 싶을 때는 바꿀 순 있지만

딴거 하다가 나이먹고 그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엔 

시간이나 여러가지 떠 안을 것이 많아 질것 같단 말이지요.

아무튼 어버이날 편지에 헛소리만 한 것 같네요.

항상 건강하게 잘 지내 주시는 것만으로 난 감사하고

이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고..내 일은 내가 할 테니깐요..

주위에선 나보고 독하다 야무지다 라고 그러니 걱정마시고...

암튼 아빠 사랑해..

 

대학 4학년인 큰 아이의 이런 저런 상황이 그대로 느껴지는 편지글이다.

취업난에 걱정만 앞서는 아빠에게 알아서 하겠다는 마음과,

전공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고민중인것 같다. 

부모가 이상적이라고 권하는 것이 아이에게 이상적일지는 미지수인지라. 답도 쉽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중심적인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엄마

내가 아빠 편지쓰고  엄마꺼 바로 쓰려니깐 손이 아프네.

이만쓸게.. 이러면 용돈을 깍을까봐 손이 부러져도 써야겠지?ㅎㅎ

얼마전에 손목을 삐끗해서 아픔을 참으며 쓰는거라고...

왜냐면 이번에 돈이 없어서 엄마 선물은 편지로라도 떼워야지...ㅋㅋ

선풍기사고 화장품 사고 서울다녀오고 비타민 사고

페브리즈 피존 뭐 이런거 다 사니깐 돈이없네

옷은 한벌도 안 샀는데 참 나갈때는 많아..

하숙집 아줌마가 신혼방 차리냐고 하더라,, 오늘 소포가 한꺼번에 오니깐

요샌 엄마도 학생이고 여러가지 활동 많이 하니깐 바쁘겠다.

엄마가 웬지 자랑스러워..

--

암튼 엄마도 어디 아픈데 없고 건강하게 잘 지내 주는 것이 나한데 행복이야.

남은 인생을 아빠랑 실컷 놀러다니고 맛있는거 먹고 그래.

나는 내가 알아서 잘 되게 할거고, 권이는 내가 잘되게 할게

요샌 가끔 이제부턴 내가 가장인것 같아서 어깨가 무겁단 말이지..

웃겨 아주 그냥,,, 아직도 용돈 받아 쓰는게 가장 같다고 느끼니 , 아이러니

하지만 암튼 그렇다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이만쓸게.. 엄마 사랑해..

 

속내를 유드리 없이 잘 표현하는 녀석, 그래서 녀석을 보면 마음이 투명해진다.

 

 

 

어버이날 전날밤에 모인 두녀석에게 흥겨운 소란이 인다.

큰아이는 아빠선물 작은 아이는 엄마 선물을 사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었나 보다..

"야, 너 아빠건 내가 하기로 했는데 왜 아빠것 까지 준비했어,  나는 엄마것 준비 안했단 말이야."

"그냥 아빠것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엄마 아빠 선물에 카네이션 바구니까지 사들고 온 작은 아이를 보며

큰 아이는 너만 점수 딸거냐며 반칙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뭔지 궁금해 보여 달래도 내일이 오기전에는 절대로 안된다며 개봉박두만 기대하란다.

 

다음날 아침, 전교 1등한 성적표 내놓듯이 작은아이가 큼지막한 포장지를 내 놓는다.

책 볼때 편리한 책 받침이다.

"엄마 어때?  좋지?  기발하지?  꼭 필요한 거였지? " 속사포 애교가 넘친다.

생일이거나 기념일엔 주로 책을 선물해줘서 당연 그럴 줄 알았는데.. 

두꺼운 책 볼 때마다 빳빳한 재질때문에 손으로 힘껏 눌러 기를 한번 죽여놓고! 보거나 

아니면 사전이나  무거운 것을 곁에다 두고 올려가며  봤는데. 

고개 숙여 보면 목이 뻐근한 부분까지 이 두가지가 단박에 해소되는 선물을 준비할 줄이야.

눈높이 각도도 3단으로 맞출수 있고, 요 까만 손가락 같이 생긴것이 손역활을 대신한다.

필기 할려면 불편했는데 기능적인 측면이  맘에 꼭 든다. 무얼할까 고민했을 테고,

이것을 유추해 내기까지의 고민과 발상까지 고맙다..

 

손목 아대를 하고 있는 큰 아이도 편지로라도 뗌빵하겠다는 생각까지.. 이쁘다.

편지는 사람보다 더 반가울 때가 있다. 속마음을 전할 수 있어 그런 것 같은데,

만나도 속내를 비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을,  글로 다듬어서 전할수 있으니, 

편지가 마음을 전하기에는 좋은 것 같다..

마음이 흔흔해져서 하루 종일 미쁜 마음으로 지냈다.

 

 

아침에 우유주머니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천사의 편지!

작년에는 우편함에 넣어두고 가더니 어느새 다녀 갔는지..

역시 편지가 여운이 오래 남는 다는 걸 느낀다.

 

 

이모 이모부께

안녕하세요 저 서영이예요.

어버이날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ㅎㅎ

앞으로는 자주 놀러갈 수 있도록 노력? 할게요.

그리고 부탁 드릴 게 있어요.

이모부! 제가 안된다고 하면 좀 포기해 주세요~~~

정말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이모부를 싫어하는건 아니예요. 아시죠?ㅎㅎ

이모도 당연히 사랑하고요.ㅎㅎ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선물 못드려서 죄송해요 주머니 사정이 안좋아서 ..2010,5,7 이서영 올림.

 

남편은 제니가 보고 싶거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물 불 안가리고 조른다.

 "오라고, 또는 같이 가자고"

이 글을 읽고는 은근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나 싶어 물어 보았더니, 그 정도는 아니며,

이모부가 안된다고 할 때는 포기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라고..ㅎㅎ

이모부가 포기를  해 줄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글쎄요, 포기가 쉽진 않겠죠!." 란다. 녀석 얼마나 영특한지..

이모 이모부의 사랑을 확신한 것 같은 녀석의 마음씀 까지.. 생각이 쑥숙자라고 있는 녀석이다.

5학년이 되고 부터는 자주 오지 못하고 있다. 학습량도 많고,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우리에게 까지 할애할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남편이..  

 

 

아이들이 커서 선물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제대로 잘 키웠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어린이날엔 말한마디 없다가, 어버이날 되니 알아서 들 찾아오고.. ..

그 흔흔한 기분에 취해서  두 녀석 데리고 쇼핑을 갔었다.

1년에 한번정도 있는 날이니 맘껏 쇼핑하자고 했더니 물만난 고기다.

옴팡 바가지!를 썼다. 썼지만 기분은 좋다...

멀리서 찾아오고, 함께 노는게 좋은걸 보니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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