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애 호박과 늙은 호박

구름뜰 2010. 9. 20. 09:51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런 늙은 호박이 열리는 호박순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호박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고 호박이라면 꽃이 이쁘지 않다는 정도의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다.

늦은 가을 쯤에 시골에 가면 어머님이 늙은 호박을 뜨락 같은 곳에다

몇 덩이씩이나 따 놓으신것을 보면 아, 저것이 나오는 철이구나 그런 생각만 했다.

 

한 십여년은 지난 것 같다.. 아마도 그 해는 추석이 조금 늦었던 것 같다.  

어머님이 나를 따라 오라시며 데리고 간 곳이 사진 처럼 누런 호박이 여러 덩이나 있는 곳이었다.

호박이 완전히 익으면 호박잎도 거의 꼬시라져서 없고 줄기만 앙상하지만,

그래도 군데 군데 호박잎에 남아 있던던 때였는데, 숨은 호박찾기 하듯

여기 저기서 호박잎에 숨은 것들을 찾아냈던 기억이 있다.

솔직해 그 때서야 애 호박과 늙은 호박의 관계를 알았다.ㅎㅎ

 

 

 

 

 

호박은 한 줄기만 있으면 여름 내내 호박잎을 즐길 수 있다.

호박꽃 뒤로 이렇게 탐스런 호박이 점점 커져서 가장 부드러워 따 먹기 좋은 때를

애호박이라고 하는 것과 그것이 청소년기를 지나 ㅎㅎ 어른이 되어도 가만 놔두면

가을에 멋진 늙은 호박이 된다는 것,,

 

조상님들이 호박에다 애와 어른이라는 호칭을 넣어서 명명한 이유, 즉

어원은 잘 모르지만 우리 사람들에게 붙이는 호칭을 어찌 호박에 붙였을지.

아마도 그만큼 사람에게 유익한 식물이거나

사람의 습성을  닮은 무언가가 있어서 이거나 그럴 것 같다.

 

 

호박에 관한 속담중에

'호박은 떡잎부터 좋아야 한다'는 말처럼 사람도 어렸을 때부터 잘 키워야 한다는 뜻과

'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은 데로 간다'처럼 호박 넝쿨이 옮겨 놓은 데로 뻗어가듯이

딸도 시집을 보내면 남편 따라서 살기 마련이므로 사윗감을 잘 골라야 한다는 듯을 내포한 속담도 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할 때는 좋은 일이 있음을 의미하지만,

사람이 잘 들어온 경우를 두고도 은유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애 호박과 늙은 호박, 인품에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어릴적에는 요 연초록에서 부터 짙은 초록까지 색만봐도 풋풋함을 나타내고,

나이들면, 진초록으로 풋풋했던 흔적은 찾을 수도 없고 누렇게 변해가는  것이

노년기라야 인격적으로도 완숙미를 갖추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세월의 힘,  시간이 해결해주는 성숙미를 이 호박에서도 느낄수 있는 것 같다.

요녀석은 아마도 아직 어른 호박의 반열에 오르려고 애쓰느 정도의 호박이 아닐까.. ㅎㅎ

 

 

오늘 아침 단상은 호박이었습니다. ㅎㅎ

추석 이맘때면 엄마는 일찌감치 일을 도우러 큰집으로 가셨고,

큰 집 마당에서 솥뚜껑을 뒤짚어놓고 하루 종일 전을 붙이셨던 것 같습니다.

젯상에는 올리지 않았던 것 같지만, 딸린 입이 많은 어린 우리들 주전부리용으로

늙은 호박을 숟가락으로 긁거나 채 썰어서 일단 어린 우리들 배부터 호박전으로 채워주셨지요..

그 단맛! 누런 호박전이 기름의 구신맛과 어우러져서 먹던 기억,, 꿀맛이었지요,

전 중에는 호박전만큼 단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명절이면 마냥 좋았던 시절..

어릴적 명절은 명절 빔에서 부터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신나는 일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맞는 명절은 그때 와는 다른것 같습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도 우리 때 만큼 행복할까.. 명절을 좋아할까.. .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우리어릴적  만큼은 아닌것 같아서, 그것이 어른인 우리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런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풍부해졌고, 좋아진 세상인데  마음은 예전만큼 풍요롭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즐거운 명절들 보내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