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든 밤
골방에서 아내는 금강경을 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말 안하고 생각 안하고
한 권을 온전히 다 베끼면
가족이 하는 일이 다 잘될 거라고
언제나 이유 없이 쫓기는 꿈을 꾸다가
놀라 깨면 머리맡 저쪽이 훤하다
컴퓨터를 켜놓고 잠든 아이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속에서
경을 쓰는 손길에 눈발이 날리는 소리가 난다
잡념처럼 머나먼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경소리
나는 두렵다
아내는 나를 두고 세속을 벗어나려는가
아직 죄 없는 두 아이만 안고
범종에 새겨진 천녀처럼
비천한 나를 떠나려는가
나는 기울어진 탑처럼 금이 가다가
걱정마저 놓치고 까무룩 잠든다
--전윤호 1964~
의기가 소침해진 한 가장의 내면이 반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가장 밤에 쫓기는 꿈에 놀라 깰 때마다
아내가 골방에서‘금강경 베껴쓰기’라는 두려운 공작(工作)을 벌이는 속셈을 읽어낸다.
사실은 세속을 떠나고 싶은 자신의 속셈인 거지만.
아내의 금강경 쓰기는 가족의 안녕을 위한 기도라는 떠남이고,
쫓기는 꿈처럼 늘 도망 중이었던 남편의 '아내의 금강경 쓰기 엿보기’는
몸 묶여 비천한 그만큼 높은 꿈으로의 기도며 떠남인 것.
두 아이를 안은 아내와 남편, 세속이라는 범종에 새겨진 천남 천녀들.
--<이진명·시인>
일요일 한낮, 모처의 행사장에서 내 옆에는 앉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두사람'이 모종의 눈빛!을 주고 받으며 나눈 메모지다.
무애그리 할 말이 많은지 행사 시작전부터 속닥속닥,
행사가 시작되자, 종이를 주고 받았다.
뭔가 했더니 이런 메모들이 적혀 있다.
지겨웠던지,
살며시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을
선문답!을 주고 받을 만큼
소통이 잘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군다니 이성이라면 말해 무엇하리.. ㅎㅎ
시가 좋아 입만 열면 시 얘기하시던 분이었는데,
한 술 더 떠 '시는 내인생'이라는 메모는
낚서를 주고 받은 여인의 메모라니..
주변에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훔쳐보기에서도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
'아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0) | 2011.07.22 |
---|---|
모든 것을 살아내는 것 (0) | 2011.03.26 |
소울메이트(soulmate) (0) | 2011.03.03 |
고독을 즐긴다 (0) | 2011.02.23 |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0) | 201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