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구름뜰 2011. 5. 7. 21:23

 

-모과나무-

 

시의 첫 구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심코 지나가는 말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본 말,

우리가 말하기 전에 말은 제 빛깔과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무염수태(無染受胎),

교미도 없이 첫구절에서 나왔지만 빛깔과 소리는 전혀 다른 것.

시의 셋째 구절은 근친상간,

첫 구절과 둘째 구절 사이에 태어났으니,

아들이면서 손자 딸이면서 손녀.

눈 먼 외디푸스를 끌고 가는 효녀 안티고네.

말들의 혼례가 끝나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도,

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성복

 

시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는 법을 말해주는 시다.

시는 할 말 (주제)을 궁리해두고 논리에 맞게 적어가는 글이 아니다.

그건 연사이거나 변사의 문법

시는 무심하거나 심심한 말,

그냥 거기에 있던 세상의 말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아비도 없이 새끼를 친다.

그래서 시는 신화와 닮았다.

세상이 있으니 누군가 그것을 낳았을 것이다.

이 '낳은이'를 대모지신이라 한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낳은이'인 자식과 짝을 이루니 이것이 근친상간이다.

시의 수태고지란 이 시의 진짜 주인이 시인 자신이 아니라는 통지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여. 정녕 이걸 제가 썼단 말입니까?"라고 감탄하는 시인에게 신이 대답하신다.

"에이, 설마........"

대구 사는 큰 시인께서, 통 크게 영업 기밀을 누설하셨구나.

--권혁웅 시인..

 

'시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화(羽化)의 강  (0) 2011.05.11
비오는 날   (0) 2011.05.10
동백  (0) 2011.05.04
사랑법  (0) 2011.05.03
나라는 모순에 대하여  (0) 201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