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그 여자

구름뜰 2011. 5. 17. 09:12

 

 

그여자1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도

하긴 다이기야 할까만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웬만큼 다 하고도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별로 믿고 싶지가 않다.

 

요즘 세상에 뭘 그리 전설같은 여자가 다 있을라구

갖출 것 다 갖추었다고 소문 난 여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 리도 없다.

그래 어디만큼 갖췄다고, 한 번 보기나 하자.

 

벚꽃 아래 마주치는 얼굴들

하필이면 흰죽 같다 그러면서

끌어안고 어디 물컹 닿았는데

나중에 보니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웃기도 이야기도 막하고서

 

질펀하게

질펀하게 놀아보자랬던가

질펀하게라는 그 말, 금방 하고 돌아서서 또 하고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막 써도 예쁜 여자, 세상에 처음 보았다.

 

가질 것 다 가졌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참 많이 가져놓고

겸손한 마음까지 가졌다는 것

겸손말고 아무 것도 들키지 않는 완벽한 연기력까지 가졌다는 사실이다.

생각하면 배 아프고 가끔씩 쫌 미울 것 같은 그 여자.

 

 

그여자 2

 

그 여자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단 둘이 타고

팔공산 돌아나오는

호사를 나 혼자서 다 누린다.

 

은행 좀 보세요, 진짜로 가을이예요

저 연두 봄에도 딱 한 번 볼 수 있지요

저기는 요, 봄이면 목련꽃이 가득해요

저녁이면 꽃등이 얼마나 예쁘다고 말하면서는

핸들에서 손을 들어 저기저기하고 짚어 쭐 때는

가느다란 손끝으로 연한 빛 비쳐나는

꽃등이 그렇게도 보고 싶은 것인지

눈물 슴벅 고여오는 걸 참느라고 혼났다.

들켜보려도 아무렇지도 곤란하지도 않을 것 같으면서

왜 그랬지, 눈물은 왜 그랬고 참기는 왜 참았담

 

이런 날, 참 좋죠? 조금은 흐린 듯한

이런 날은 산도 더 잘 보여요

비비추랑 머머머랑

지나면서 길가에 스치는 나무 이야기

나무 이름 하나도 안 잊고

기억하려 했는데 홀라당 잊고 말았다.

 

저기는 요, 비오는 날 혼자서 차 마시러 오는 집이에요.

비오는 날, 나도 저기 와볼까. 그것도 나 혼자서

그러면 그 여자 가슴으로 흐느는 비 무늬, 내게도 비슷하게 스며는 오는 걸까

우연처럼 만나면 반가워는 해 줄까

아니 이참에 나도

비오는 날 혼자 가는 찻집이나 보아둘까.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둘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침묵이 힘들지 않은

네 번쯤일까 겨우 만나는 그 여자랑

가을 오는 팔공산 순환도로 달리면서

둘이서 나눈 이야기

그대로가 한 편 의 시가 될 거 같아서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는데

저녁 내내 떠들다가 다 잊고 말았다.

 

저기 능선 좀 보세요.

계절, 시간, 날씨 따라 한 번도 같지 않아요

어머나, 이게 뭐야, 빗방울이 떨어지네요.

차창에 떨지는 빗방울도

그 속으로 비쳐드는 흐린 가을 산속의 빗줄기도

그대로가 한편이 시가 되어 남을 것을

다 잊고 말았다. 그 여자와 나눈 이야기

잊으면 잊은 대로 남아질 것다.

-윤은현 2007년

 

4년 전, 친구는 그녀를 네번 만나고  '그 여자'라는 시를  썼다. 

내게 그녀와의 인연은 올봄 삼월이었다. 그녀가 강의실로 들어온 그 첫날,

첫대면에 대한 긴장감일까. 부끄럼일까.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시강좌 수강생들을 위한 모두 발언은 대충 이랬다.

 

"왜 글을 쓰는지, 쓰면서 가지게 되는 아름다운 습관, 처음으로 겪어보는 발견이 있다면 마음이 풍성해질 것이다. 그것을 바란다. 한 학기 동안 그동안 경험 못 한것 해 보시길, 글 잘 쓰는 일은 살아가는 일의 방편이다."

 

"정서적 감성적 영혼에 대한 여유, 아름다움 가질 때 되었다. 가졌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주게된다. 그러다 보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약간 상승하게 된다. 그것을 느껴보시길.."

 

"말장난도 하라, 말에서 해방되어야 글쓰기가 자유로워진다. 영혼은 자유로워지고 감각은 가벼워지고 경쾌해져라. 긴밀한 관계, 따뜻함 느껴라 그런 다음 쓰고 싶으면 맘껏 쓰라. 힘들어도 의미 있고 가치있는 일이다.

작게라도 변화 있었으면.. 나도 행복하겠다."

 

"꽃밭은 준비되어 있으니 꽃 한 송이 피우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작고, 나직한 목소리로 교재를 읽었다.

 

"시가 깃드는 자리는 예쁘고 화려한 것보다는 상처나고 거친 부분에 시가 있습니다. 우리 삶은 생각만큼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늘 상처받고 외로우며 충만하기보다는 허기질 때가 더 많지요. 믿음보다는 불신이 화해보다는 갈등이 수시로 우리 곁을 왕래하고 있으니까요. 삶이란 우리가 꿈꾸는 것보다 훨씬 아프고 치사란 것이라고 봐도 됩니다. 시는 그러한 삶의 누추한 부분들을 기록하는 것이며 상처를 통해서 상처를 직시하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기록하면서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상처를 직시하면서 상처를 반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기침처럼, 감출 수 없는 반가움! 친구는 그 첫수업 얘기를 듣다가는

밥사겠으니 시간좀 내 달라며 늦은 저녁시간에 우리 동네로 달려왔다.

그녀의 후광을 누리는 것 같이 그 저녁에 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그녀가 내게로 온 것 같은, 시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이 고귀한 결 만으로도 기꺼운, 

'겸손, 맑은 겸손, 맑아서, 맑기는 다섯 살 같고 깊이는 알수 없는 수심!.'

그런 그녀가 화요일마다 온다.

그녀가 달려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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