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셋 둔 것 같다!" 오늘 아침 식탁에 앉자마자 내게서 나온 탄성이다. 삼월이면 중3과 중1 되는 대구 사는 조카 둘이서 고모집이라고 놀러를 왔고, 이에 합류한 한동네 사는 조카 제니까지, 딸내미 셋과 1박을 하고난 아침이었다.
중3 되는 녀석은 내가 신문을 보든 무엇을 하든 살며시 다가와서는 얼굴을 씨익 들이밀며, "재밌어요? 뭐해요?" 신기하다는 양 곁을 맴돌았다. 그러고선 몇마디 대꾸해주면 까르르 넘어간다. 묻는 말엔 대답도 잘 안하면서 알고 싶은건 많은가 보다. 주방에도 따라와서는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모는 음식만드는 게 재밌어요?" 먹는 것 보다 만들어 먹이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어찌알았는지. 도마에 양배추 손질하는 것을 보고는, "와아! 고모는 칼질도 재밌게 하네요." "청소도 재밌게 하세요?" 잘 밤에 입을 옷 찾아 주는 내게 "고모는 옷도 재밌게 찾네요." 녀석 내게 뽕 간건지 모든게 다 재밌어 보이는가 보다.
미소년 같은 열여섯 소녀의 시선이 나를 쫒고 있으니 내 기분이 아니 좋을리 없다. 우리집 아들 놈들이 내게 이토록 지극히 지구력있게 관심의 눈길을 보내준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올해 조금 나아 졌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중성적인 외모여서 궁금한 걸 못참는 사람들은 이녀석을 보면, "남학생이예요 여학생이예요?" 물을 정도였다. 그러면 나는 농담처럼 "남학생이예요." 하면, 믿던, 그러면 잠시후 "정말요?" 라며 헷갈려 하던......
아침밥이 다 되었노라 밥솥이 신고식을 하자 작은 것이 달려와서는 "수저통 어딨어요?" 식탁위에 수저를 놓는다. 찬류를 담아내는 족족 식탁위로 공수해주고, 의자가 모자라서 하나 더 가져다 놓은 자리에 남편이 앉았고, 생전 처음 맞는 아니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딸셋과 함께한 횡재수!에 남편도 입이 귀에 걸렸다. '내 생애 이런 기쁜 날이 또 있을까'라는 표정이다.
내 생애 그런 기쁜 길이 남아 있을까.
중학 1 학년
새벽밥 일찍 먹고 한 손엔 책가방
한 손엔 영어 단어장 들고
가름젱이 콩밭 사잇길로 시오 리를 가로질러
읍내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에
함뿍 젖은 아랫도리가 모락모락 흰 김을 뿜으며 반짝이던
간혹 거기까지 잘못 따라온 콩밭 이슬 머금은
작은 청개구리가 영롱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팔짝 튀어 달아나던
내 생애 그런 기쁜 길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을까.
-이시영
<마음의 고향>이란 시다.
놀러오는 길에 새 교과서 받은것 가져오라 했더니, 이렇게 설렘으로 가득한 시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내 생애 그런 기쁜 길이 남아 있을까.
- 내 생애 그런 기쁜 길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을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70년대, 나도 이런 마음이 있었을까. 교복에 대한 인상만 남아 있다. 두발자유화도 없었고, 남학생들은 까까머리였고, 모자에는 中자가 고등학생은 高라고 박혀 있었으니 신분을 바로 알 수 있는 때였다. 하기사 굳이 신분이 필요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시골에서는 멀리서 봐도 뉘집 아들인지 딸인지, 반대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되면 누구네 어른이신지, 논 밭만 봐도 누구네 것인지 알았고, 그 곳에서 풍경처럼 일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사시사철 변함이 없었으리라.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느나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은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고, 방학이 되면 더러 큰집엘 갔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 고향에 갔을 때, 남자동기들이 논밭에서 농기구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훌쩍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도시 남학생들에게선 상상도 안되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밤길에서도 실루엣만 보고도 아이 부터 어른까지 다 알아보았다. 나는 못 알아봐서 친구들보다 인사때를 놓쳤고 모르니 그냥 지나쳐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저편에서 '너는 누구냐?'며 반드시
검열하듯이 알고 넘어가는 그런 정서였다. 하여 나는 시골에선 무조건 어른을 만나면 인사부터 하고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구네 맏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 내게서 내 부모님을 보시는 거라는 것까지 일찌감치 알게되었다. 도시의 데면데면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비하면 고향은 타성받이든 아니든 집성촌 같은 정서가 되는 곳이었다.
여학생들은 단발이었다. 교복은 검정색 바지 투피스에 자주색 넥타이와 하얀 칼라를 덧대어서 입었는데. 칼라만 빨아서 다시 붙일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 (3년을 입어야 했으므로 커기도 했다)은 신분 상승같은 묘한 소속감으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전율도 있었다.
갑자기 조무래기 들만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서 뒷편 중학교로 등교할 때의 기분, 운동장이 넓었고 건물도 면에서 2층 건물은 중학교 건물 뿐이었을 때고, 그것이 높아진 위상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었다. 교복은 지켜야할 규범 같은 것을 더 존중할 줄 알게 되는. 마치 경찰관이 제복입고는 딴 생각을 못하는 것 같은 그런 소속감을 주었다.
중학생 조카들을 보면서 30년도 넘은 시간으로 잠깐 돌아가 보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 이었는데 지금 이 아이들은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나중에 나 만큼 나이들었을 때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며칠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두 녀석은 여전히 초등생같은데.. .
권이 오빠한데 위문편지 쓰자고 했더니 이렇게 한 통씩 거뜬히 써주고 녀석들은 떠났다. 파란 봉투는 막내가 쓴 것인데, '일병 장군'으로 쓴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재밌는 이름이다. 이것을 장군님이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들지... 이 편지는 함께 하지 못한 권이에게도 반가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큰 고모 도착했어요. 맛있는 거 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놀러 갈게요. 큰 고모에게 하트반쪽 날릴게요 ㅎㅎ " " 나도 하트 반쪽 슈우~~~웅" 머스마같은 녀석의 순수한 속내가 내게로 날아왔다. 떠나면서 현관에서 한 손으로 앞파벳 C자 모양을 만들며 하트 반쪽이라고 알려주고 가더니,.. 1박 2일 만에 데면데면한 고모와 조카 사이가 더욱 공고해진 것 같다. 내가 다가간 것이 아니라 녀석이 내게로 확 다가온 느낌이다. 내게 딸가진 재미를 주는 녀석들 함께 한 시간에 잔잔한 여운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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