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기로 하고 300만 원을 받았다.
살찐 마누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어머니의 임대 아파트 보증금으로 넣어 월세를 줄여드릴 것인가
그렇게 할것인가
이 목돈을 깨서 애인과 거나히 술을 우선 먹을 것인가
잠자리를 가질 것인가
돈은 주머니 속에서 바싹바싹 말라간다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돈봉투 끝이 너덜 거리고
호기롭게 취한 날도 집으로 돌아오며 뒷주머니의 단추를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잘 있나, 그럴성싶지 않은 성기처럼 더듬어 만져보고
잊어버릴까 어디 책갈피 같은 데에 넣어두지도 않고,
대통령 경선이며 씨가 말라가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텔레비젼 화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꼭 쥐고 있는
내 정신의 어여쁜 빤쓰같은 이 300만 원을,
나의 좁은 문장으로는 근사히 비유하기도 힘든
이 목돈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의 내 경제관으론 목돈이라면 당연히 땅에 투기해야 하지만
거기엔 턱도 없는일, 허물어 술을 먹기에도 이미 혈기가 모자라
황홀히 황홀히 그저 방황하는,
주머니 속에서, 가슴 속에서
방문객 앞에 엉겹결에 말아쥔 애인의 빤쓰같은
이 목돈은 날마다 땀에 절어간다
-장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