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노지 파는 단맛이 돕니다.
어제는 선산 장날, 노지에서 나는 파를 찾아갔지요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맘에 드는 파 한 단도 사고,
여고시절 방과후에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유혹하던 핫도그도 물었습니다
주전부리 그득한 시골장터가 정겹습니다
백발같은 파뿌리를 잘라내는데.
뽀얀 속살 드러날수록 어룽어룽 눈이 아롱져오고
양념을 준비하고 버무리고 통에 담고,
접시에 담고 보니
서운합니다.
파김치 담그는 일이
혼자만 즐기는 이 일이 웬지 서운합니다.
옛날 옛적,
초록저고리 다홍치마가 초록재 다홍재로 무너진 신부가 생각납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않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친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 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사십년인가 오십년 지나고
뜻밖에 볼일이 있어서
신부네 집 옆을 지나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어깨를 어루만지니
매운재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문 돌쩌귀에 걸친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전설이든 민담이든.... 한 스럽지요. 신랑도 신부도 어쩌면 그 시대의 희생양 아닐까요.
이념, 관념, 사회 환경, 부모 자식 타인과의 관계 등 우리는 사회 규범안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 없지요.
자유를 꿈꾸지만 훈습된 것들에 익숙하지요.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이 내 생각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편견, 이해하고자 하는 그 자체가 오류를 범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내 생각이 맞다는 생각 만큼 우리는 더 이념적인지도 모릅니다.
하나의 사물은 양지와 음지가 공존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