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꿀벌 한 마리 날아 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 "은교 빌리러 왔어요."
"커피 한잔이면 돼요."
어제 아침 남편이 막 출근하려는 시간, 아파트 앞을 지나던 지인이 찾아왔다. 설겆이 미뤄두고 맞이했지만 그렇게 덜컥 무심한 듯 턱하니 찾아온 사람 두어 시간 조용히 앉았다가, 별말없이 갔지만 그녀가 제대로 실감나는 아침이었다.
사람이 오는 것, 몸으로 오는 것, 생각만 하지 않고, 직접 오는 것, 이 얼마나 실감나는 일이며 진정으로 오는 일인가. 나는 한 아름 실감으로 오는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온전히 실감하게 된다.
# 동생네는 강아지 '다크'(데리고 오는 날 우리집에 먼저 들렀는데 다크서클이 심해서 내가 붙여준 이름이다)와 조카 제니, 네식구가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계곡 피서지에 동행했던 다크가 물 만난 고기처럼 수영도 하고 잘 놀더니, 오후에 들자 끄응,, 끄응 (뭔가 불편하거나 요구사항이 있을 때 내는 소리)댔다. 동생이 '피곤하니 빨리 집에 가자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니다 다를까 집에 도착해서는 제 자리로 가 늘어지게 자더라는 것. 제부 왈, 개도 '집 나가 봐야 집 좋은 줄을 아는 것 같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다크'는 요즘 내게도 은근 애정표현을 한다. 조카나 동생이 "이모 왔다 이모 왔다"며 나를 볼 때마다 소개해 주니, 내 이름이 이모인줄 알고 '이모' 소리만 하면 나를 본다. 다크가 가장 이쁠 때는 눌 자리를 찾을 때다. 저 혼자 놀다 잠이오면 무심한 듯 왔다 갔다 하다가 제 맘에 드는 이 곁에 와서는 터억하니 앞다리를 얹고는 그대로 눕는다. 마치 당신을 내가 찜했어라는 마음을 온몸으로 실감나게 드러내는 몸짓이다.
전에는 제 식구들에게만 하던 짓을 요즘 내게도 부쩍 들이 댄다. 그러면 나는 꼼짝도 않고 녀석이 잠 들도록 기다려 주는데. 내가 누워있으면 팔이나 얼굴께쯤 와서는 저 편한대로 다리 하나를 올리는데 눈이고 코고 가리지 않고, 저만 좋으면 그만이란 듯 들이댄다. 이쁘지 않을 수 없다.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지만, 몸으로 직접 오는 것만큼 실감날 때가 또 있을까. 너는 나의 실감이고 나는 너의 실감 우리 각자는 실감 덩어리 아닐까.
말도 마음도 몸만큼 중요하지 않을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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