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시끄럽게 신나게

구름뜰 2012. 8. 13. 09:55

 

 

 

모든 사람은 꽃이다

감히 피어 본 꽃들이다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있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절대로 절대 안정이다

오늘 나는 절대 안정 중인 꽃이 다섯 송이 나란히

길에 앉아(할머니 들이다)

열심히 감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식당 아저씨가 배달 가는 길에서

오토바이 거울에 얼굴 비추며

여드름 짜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목격했다

그 다음에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열심히 엎드려 팔굽혀펴기하는 젊은이를 봤다

이 절대 안전 기간 중의 몰두의 계절, 유별난

몰두의 꽃들이여, 몰두의 가을이여

장자의 나비들의 날개치는 소리는

클랙슨 소리 못지 않게

소란스럽기도 하고

거리에는 약도 독도 많겠지만

열중하는 그대들에게는 무용지물

그대들의 절대 안정 기간을 방해하는 이가 없도록

살아계세요, 몰두하면서

시끄럽게

신나게

-사이토우 마리코  <살아 계세요>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는' 꽃, 우리삶의 유한성이 객관적 상관물인 꽃과 무애 다르랴. 

'살아생전, 절대 안정, 절대로 절대 안정이다' 이 시에서 안정은 우리 삶 속 절제와 극복의 의지를 강력하게 제시하는 시라고 어느 시인은 평했다. 그리고 '몰두'는 살아 움직이는 모습, 저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절대안정으로 연결시켜 놓았다고,,  <그대들의 절대 안정 기간을 방해하는 이가 없도록/ 살아계세요, 몰두하면서/시끄럽게/ 신나게>

 

 

 

 

 방학이라 조카 셋이 놀러 왔다. 터미널 마중가는 길부터 딸내미 셋 맞을 기대감으로 설렜는데 녀석들 배불리 먹고 나니 만사 귀찮은지 뒹굴뒹굴이다. 금오지 올레길도 한바퀴 다 완성되었으니 추억만들기도 할겸 갔지만 한 녀석은 금오산 하면 파전을 먹어야 한다 하고, 한 녀석은 오리배 타고 싶다 하고 한 녀석은 하고 싶은게 없단다. 먼저 타본 녀석이 오리는 남친 생기면 타러오는게 훨씬 더 재밌을 거라는 의견을 냈고, 다음으로 미루고 감질 날만큼 쬐끔 걷고 파전만 먹고 왔다. 

 

 다녀와 생각해보니 오리배를 탈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저들 좋아하는 놀이 동산엘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중학생 수준에 맞는 추억만들기는 못한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어릴적 방학때 시골가면 어른들도 바빴고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노느라 바빴는데. 서로가 신경써줄 필요가 없었는데. 배 고파도 노는 재미에 빠져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 들을때까지 어둡도록 놀았었는데. 아파트 문화라 그런지, '시끄럽게 신나게' 놀던 우리때와는 정말 다른 것 같다.

 

지금 이 아이들도 그 옛날 우리 중학교 시절 만큼 그렇게 재밌게 노는 건지 모르지만, '시끄럽게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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