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훈련

구름뜰 2012. 8. 27. 09:37

 

 

 

 

 

 

팬티 끈이 늘어나

입을 수가 없다. 불편하다

내 손으로 끈을 갈 재간이 없다.

제 딸더러도 끈을 갈아 달라기가

거북하다. 불편하다.

이제까지 불편을 도맡았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는 요 몇 해 동안

나더러 설러지도 하라 하고,

집 앞 길을 쓸라고도 하였다.

말하자면 미리 연습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가시게 그러는 줄만 여기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는 나더러 짜 달라고 하였다.

꽃에 물을 주고, 나중에는 반찬도 만들어 보고

국도 끓여 보라고 했다.

그러나 반찬도 국도

만들어 보지는 못하였다.

아내는 벌써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팬티 끝이 늘어나 불편할 것도

불편하면서도 끙긍대고있을

남편의 고충도

-박남수. 시집 <그리고 그 이후> '문학수첩' 1993년'

 

 

 

 

 

 어떤 고도한 의식의 그것보다도 아주 일상적인 개인사의 그것이 온몸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만큼 진솔하기 때문이다. 나와 있는 그대로 죽기 직전의 아내가 보인 저 눈물겨운 배려와, 좀 민망하기야 하지만 늘어난 팬티 끈을 갈며 혼자 끙끙대고 있는 화자의 모습에서 그가 평생 기대고 살던, 사별한 아내와의 아득한 거리가 감지되는 순간 누구나 가슴 가득 차오르는 눈물의 수위가 위태롭게 만져졌을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1975년 이래 미국에 머물고 있는 우리 원로시인 가운데 한 분이다. 1939년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과 함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장'지를 통해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 오늘에 이르기까지 54년에 걸친 그의 문학적 삶과 시의 역정이 남달랐음을 이해하고 보면 저 같은 사정은 더욱 짙게 우리를 적시는 바가 없지 않다.

 

 그는 1951년 월남, 다시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해 오늘에 이르렀다. 연속된 실향, 평생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그는 이른바 '경계인'이었다. 거기에다 이제 아내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통해 이승과 저승이라는 또다른 절대적 경계의 세계에 이르고 있다.

 --

 이 시에서 시인은 <불편하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연거푸 사용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내의 죽음이 <불편하다>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느냐는 항변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눈물의 수위>를 가져왔는가.

 

겸허와 자제 때문이다. 젊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젊은 사람들은 기쁠 때 너무 풍선처럼 둥둥뜨고, 슬플 때 지나친 비탄에 빠진는 과장과 노출을 일삼는다. 그래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다.

<불편하다>는 말 속에는 겸허와 자제의 아름다움이 있다. 자신의 상처를 혼자서 다스리려는 <염치>가 있다.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남에게는 예사로 상처를 주는 일들로 하여 얼마나 가슴 답답할 때가 많은 요즘 세상인가.

-정진규 (질문과 과녘>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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