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모과나무

구름뜰 2012. 8. 22. 08:29

 

 

 


모과나무가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나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 안도현(1961~ )



 점심시간 못 미쳐 한 소나기 했다. 강과 시내, 이슬이며 도랑, 땀이며 바다까지 빨아올린 적란운이 밑동가리 툭 터트려 보도블록이며 도로, 흙길, 지붕, 나뭇잎에 한바탕 난장을 치다 갔다. 우산이 없어서, 어느 빵집에 덧댄 차양 밑에 들어 빗방울의 난장을 바라보며 즐거웠다. 그러나 여기 한사코 그 소나기를 다 맞고 선 모과나무가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난, 그(/네) 때문에 미어져 올라오는 가슴을 느낀 적이 있는, 바로 그 누군가를 닮았다. 그(/네)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그(/네)도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울지 말자. 당신이 바로 그(/네)의 힘의 뿌리였다. 당신이 당신의 “그 푸른 것”을 위해 지그시 입술을 깨물 듯이.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 위 모과나무는 작년 오월 통영 문학기행 갔을 때 보게된 나무다. 예비 군복 무늬같은 몸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 하였네라'의 청마 유치환의 생가 대문 안쪽(왼편)에 있던 나무라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는다. 원래 한 몸이었는지 아니면 연리지처럼 살다가 만난건지! 는 모르지만 저러고 섰는 모양이 이영노 시인을 그리던 생애의 상징물마냥  징 했던 모과나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신문을 들인다. 그리고는 거실로 가지 않고 주방에서 뒷면부터 펼친다. 첫장을 펼치면 왼편엔 사설과 함께 오피니언들의 이야기. 훈훈한 세상사부터, 부드럽거나 예리한 칼날같은 애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재밌다. 사설을 읽으면서부터  다음장 넘기면 바로 그 자리에 오늘은 어떤 시가 올라왔을까 은근 기대하는 맘으로 보게 된다. 

 

시를 선택하고 시평을 쓰는 것은 시인이지만 그 취향에 공감가는 시가 올라와 있으면 반갑다. 구미에 맞는 찬 하나 맛보는 기분이다. 나만 먹어서 그런가 '시가 있는 아침' 때문에 식전부터 포만감에 차는 아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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